내부고발자 징계한 협회, 뒷짐 진 체육회, 민원 서류 사라졌다는 문체부
과거 운동선수였던 A 씨(28)는 2013년 3월 사고로 하반신이 전체가 마비돼 지체장애 1급을 받았다. A 씨가 다니던 한 대학병원 사회사업팀은 A 씨의 전력을 알게 된 뒤 장애인 체육을 제안했다. 대한장애인스키협회가 A 씨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날렸다. 당시 장애인 스키 국가대표 감독과 사무국장 등이 병원을 방문해 “평창 동계패럴림픽 출전 기회를 보장하고 전지훈련과 장비지원 등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협회의 약속을 믿은 A 씨는 2014년 10월 좌식 알파인 스키를 타보기로 결심했다. 장애인 알파인 스키는 하반신 장애를 가진 선수가 타는 좌식과 시각 장애 등 거동이 덜 불편한 장애인의 입식으로 나뉜다.
초반 약속과 달리 훈련과 협회 행정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2015년 초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이 아무개 감독이 비리 등으로 해임됐던 까닭이었다. 상급 기관인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조사를 마무리한 2015년 10월까지 훈련은 띄엄띄엄 진행됐다. 문체부는 대한장애인체육회에 1차로 예산을 내린다. 대한장애인스키협회는 체육회 소속이다. 협회는 체육회의 조사 뒤 국가대표 선수단 정상화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대표팀과 신인선수팀 단일 감독 체제가 분할 감독 체제로 바뀌었다. 협회는 일본인 지도자 반 가즈히코를 영입해 좌식과 입식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또한 장애를 얻기 전 스키 선수였던 B 감독과 C 감독 역시 영입해 각각 좌식과 입식 신인선수팀을 도맡게 했다.
코치진 선임이 끝난 뒤에도 훈련은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A 씨가 속했던 신인선수팀 감독 B 씨가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 활동을 병행했던 탓이었다. B 감독은 방송출연도 하느라 합숙훈련 때도 자리를 자주 비웠다. 훈련장에 온 날에는 미성년 선수와의 식사 자리 등에서 술을 마셨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A 선수는 감독 없이 운동하다 2015년 11월과 2016년 1월 두 차례 갈비뼈 골절상을 입었다.
장애인 알파인 좌식 스키 모양.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대한장애인스키협회 홈페이지
두 차례 모두 같은 부위에서 발생했다. 곡선 활주 때 스키를 기울일 때마다 바구니형 의자 윗부분이 A 씨의 왼쪽 갈비뼈와 계속 맞닿았던 까닭이었다. 장애인 좌식 스키는 스키 위에 바구니형 의자가 붙는다. 훈련이 중단된 기간 동안 A 씨의 마비된 하체 근육은 계속 빠져 나갔고 의자는 A 씨에게 너무 커져버렸다. 바구니형 의자는 선수의 상체 사용 범위에 맞게 조정돼야 부상 위험이 준다. A 씨는 이 사실을 지도자와 다른 선수에게 들은 뒤에야 알게 됐다.
A 씨는 협회에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장비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 협회는 “장비 자체엔 문제가 없다. 선수가 자기 몸에 맞게 스폰지 등으로 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교체를 거부했다. 장애인 스키 제조업체에 “장비가 부상의 원인인가? 경기에 지장 있는 장비인가?”라고 질의를 한 뒤 “문제 없이 제작된 상품이다. 안 바꿔도 된다”는 의견을 받아 교체 거부 근거로 사용했다. 이 업체는 한국 유일의 장애인 스키용품 제조업체였다. 일본인 감독과 다른 선수, 코치 등에게 “장비를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던 A 씨는 협회의 이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찰나 B 감독의 장비가 바뀌었다. B 감독은 선수단 예산으로 책정됐던 금액 가운데 약 2500만 원을 자신의 장비 교체에 사용했다. 협회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A 씨는 선수 장비 교체에 앞서 지도자 장비부터 교체해 준 이유를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물었다. 체육회 관계자는 “선수의 장비교체 요구는 장애인체육회에 보고된 바가 없었다. 지도자 장비는 그 해 남은 선수단 예산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답했다. 문체부는 “체육회에 시정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A 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2016년 4월쯤 협회에 감독 교체를 요청했다. 협회는 B 감독에게 해명을 요구했지만 정작 변한 건 없었다. 협회는 2015-16시즌이 시작된 2016년 10월 되레 A 씨에게 ”감독한테 사과하고 그에게 지도 받으라“고 했다. A 씨는 불복했다. 협회 사무국장은 ”사과를 거부하면 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출전이 불가하다“고 A 씨에게 통보했다. 얼마 뒤 좌식 신인선수팀 B 감독은 입식 신인선수팀을 따라 네덜란드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A 씨는 신인선수팀의 유일한 좌식 스키 선수였다. A 선수는 아무런 근거 없이 전지훈련 참가선수 명단에서 빠졌다.
A 씨는 체육회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체육회는 별다른 조치 없이 민원을 협회로 되돌려 보냈다. 협회는 2017년 1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B 감독은 훈련 중 공백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의를 받았고 음주 행위는 경고 조치가 내려왔다. B 감독은 징계가 나오기 전 사직서를 냈다. 협회는 “B 감독이 사직서를 제출했기에 징계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A 씨에게 “근거 없이 지도자의 비위 사실을 제기해 협회와 지도자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선수 선발 취소’ 처분을 내렸다. 협회의 상벌규정에는 선수선발 취소라는 징계가 없다. 또한 체육회는 징계혐의자가 징계에 앞서 그만두더라도 징계는 유지되도록 상벌규정을 정해놨다.
A 씨는 협회에 선수 선발 취소 이유를 묻고 이의를 제기했다.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A 씨는 2016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까지 찾아갔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세종시로 내려가 자필로 이제껏 있었던 일을 써내려 갔다. 문체부는 체육회로 협회 감사 명령을 내렸다. A 씨는 체육회를 방문해 민원의 취지를 또 다시 강조했다.
2017년 5월까지도 A 씨는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민원 처리 상황을 체육회에 문의하자 체육회 관계자는 “면담하며 하소연을 들어준 것으로 민원이 종결된 줄 알았다”고 답했다. 다시 제대로 된 조사를 요청하는 A 씨에게 체육회는 얼마 뒤 “확인 결과 협회의 처리 결과에는 문제가 없다. 기타 비위신고 사항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회신했다.
A 씨는 어찌된 영문인지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문체부가 A 씨의 자필 민원 가운데 일부만 체육회에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상세한 내용은 빠져 있었다. “제대로 된 민원 내용을 왜 전달하지 않았냐”고 묻는 A 씨에게 문체부 장애인체육과 관계자는 “보고서 문건 등의 자료를 유실했다”고 답했다. 같은 부서 또 다른 관계자는 “민원 문건을 자체적으로 확인하고 다음날 파쇄했다”고 말했다.
협회는 아직까지 A 씨 선수 선발 취소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감사 결과를 받기 전인 2017년 1월 사표를 냈던 B 감독은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중순 평창 패럴림픽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를 꿰찼다. 직전까지 대표팀을 지도하던 반 가즈히코 감독은 “선수들에게 폭언을 일삼았다”는 이유로 감독직에서 내려왔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일본인이다. 특정인 내정 의혹이 일었다. 반 가즈히코 감독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7년 1월 말쯤 협회가 사퇴를 요구해서 그만뒀다(KASA called for the resignation of my role)”고 말했다. 그 외 사퇴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장애인체육계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협회가 제대로 된 처리를 못했다. 문체부가 체육회나 협회로 시정 명령이 내려야 정상이지만 장애인체육계는 인간 관계가 복잡하다. 인간 관계 때문에 행정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감독 B 씨와 문체부 담당자는 둘 다 장애인 운동선수 출신으로 돈독한 사이라고 알려졌다. 문체부 관계자는 “패럴림픽이 끝나면 서둘러 처리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우성 장애인스키협회 회장은 일요신문의 인터뷰 요청에 “담당자가 따로 연락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협회 관계자는 “나중에 밝히겠다”고만 대답했다.
A 씨는 추위에 약하다. 얇은 코트를 팔에 건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던 2월 23일에도 그는 “여전히 춥다”고 했다. 그는 “일반 선수 시절만 해도 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선수였다. 그런데 하반신 마비로 하체 신경이 다 끊긴 뒤로 유독 추위를 많이 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A 씨는 일반 선수 시절 꿈꿨던 올림픽의 꿈을 살리려 차가운 눈 위를 달렸다. 꿈은 꺾였고 그는 현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일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고로 신체 절반을 잃었고 장애인 스키를 도전하다 정신 절반을 잃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