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파 “정봉주 수행” 주장 전혀 불가능한 건 아냐…당시 ‘나꼼수’ 녹음시간도 아리송
정봉주 전 의원이 지난 13일 여대생 성추행 의혹 보도를 한 언론사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 렉싱턴 호텔 레스토랑 티타임 13시 30분부터 가능했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은 정봉주 전 의원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기자회견이 예정된 지난 7일 정 전 의원이 기자 지망생 A 씨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정 전 의원은 예정된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하고, 이틀 뒤인 9일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12일에는 국회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한 의혹을 보도한 프레시안 외 4개 언론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정봉주 전 의원이 발표한 반박자료에 따르면 △날짜에 대한 보도 문제 △사건장소에 대한 보도 문제 △성추행 내용에 대한 보도 문제를 주요 골자로 한다. 즉, 피해자가 주장했던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일어났던 직접적 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 시간과 장소에 대해 자신의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의혹을 반박한 것. 그러면서 정 전 의원은 프레시안 측에 ‘성추행 날짜·시간·장소를 명확하게 밝히고, 성추행 내용의 행위가 키스인지 아닌지를 밝히며, 피해여성과 주고받은 문자 증거가 있다면 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정 전 의원은 보도된 기사를 기준으로 성추행 의혹 사건은 2011년 12월 23일, 오후 3~5시(렉싱턴 호텔 레스토랑 공식 티타임 운영 시간)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고 이 시간대에 대한 자신의 알리바이를 소명했다. 그 증거로 오후 3시 54분에 홍대 인근에서 명진스님 등 지인과 찍은 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봉주 전 의원의 팬카페 카페지기였던 정대일 씨(필명 민국파)가 “23일 오후 1~2시 사이에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정 전 의원을 내려줬다”고 폭로해 반박 논리가 깨졌다. 정대일 씨는 “정 전 의원이 오후 1~2시 사이 렉싱턴 호텔에 들어갔으며, 30~40분 정도 뒤에 호텔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과연 오후 3~5시 사이에 티타임을 갖는 렉싱턴 호텔 레스토랑을 오후 1시 30분 무렵에 사용할 수 있었을까. 취재 결과 렉싱턴 호텔 1층 레스토랑은 지배인의 재량에 따라 오후 1시 30분부터라도 티타임을 유동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대일 씨 주장대로 정 전 의원이 렉싱턴 호텔 1층 레스토랑의 룸에서 티타임을 가지는 것은 가능하다.
# 나꼼수 녹음 시각 미스터리
지금까지 정봉주 전 의원이 23일 행적에 대해 밝힌 것은 다음과 같다. 정 전 의원은 오전부터 민변 변호사를 만났다. 그러던 중 모친이 오후 12시 17분 응급실에 실려갔고, 1시쯤 정 전 의원이 하계동 을지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의 입원수속이 끝난 뒤였다. 정 전 의원은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홍대로 가 다시 민변 변호사를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오후 2시 30분에는 홍대 인근에서 명진스님을 접견하고 늦은 오후까지 시간을 보냈다. 명진 스님과 헤어진 뒤에는 나꼼수 멤버들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갔다. 당시 상황에 대한 증거로 정 전 의원은 오후 2시 52분 나꼼수 멤버들과 찍은 사진, 3시 54분 명진스님 등 지인과 찍은 사진 등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정대일 씨가 주장한 ’30~40분간의 여유‘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을지병원에서 여의도 렉싱턴 호텔로, 다시 여의도에서 홍대 부근으로 차량 이동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다. 증거로 제시된 사진이 2시 52분이므로 2시 반에 명진스님을 만났다는 정 전 의원이 실제로는 2시 50분 무렵 홍대에 도착했고 1시에 을지병원에 도착한 뒤 10여 분 만에 병원을 떠났다고 가정하면, 다소 억지스러울 만큼 촉박한 가정이지만 30~4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남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네티즌들은 다시 2011년 12월 27일에 공개된 ‘나는 꼼수다 호외3’편 방송을 근거로 들며 정봉주 의원의 결백에 힘을 실었다. 문제가 된 방송의 도입부에는 “이 호외는 정봉주 전 의원의 대법원 징역 1년 확정판결로부터 하루 뒤인 23일 금요일 낮 12시에 녹음된 것입니다”라는 멘트가 삽입돼 있다. 12시에 녹음이 시작됐다면 녹음이 끝난 시점은 오후 1시 무렵이 된다. 아무리 빨리 하계동 을지병원에 들렀다고 할지라도 1시를 훌쩍 넘겨 도착할 수밖에 없다.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들를 여유가 물리적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방송에 삽입된 멘트는 나꼼수 멤버들이 임의적으로 넣을 수 있고, 녹음 시작 시간을 말하는지 끝난 시간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 전 의원은 23일 일정에 대해 “민변 변호사를 만나고 있다가 어머니가 쓰러져서 응급실로 급히 달려갔다. 이후 다시 홍대에서 민변 변호사를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23일 12시에 녹음되었다는 나꼼수 호외 편에서 정 전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입감일에 여유를 달라고 했다.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 중인 우환도 있어 조금 미루고 싶었다. 애들도 어리고…”라고 말했다. 방송 녹음 시점은 어머니가 입원실로 옮겨진 뒤라는 것이 유추된다.
뿐만 아니라 52분으로 이뤄진 호외편 방송이 끝날 즈음에 “우리가 방송하는 사이에 워싱턴포스트에서 정봉주 기사를 크게 다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에서 정봉주 전 의원 사건을 다루며 보도한 기사는 현지시각으로 2011년 12월 22일~23일 새벽 온라인에 노출됐다. 서울 기준으로는 23일 오후 4시 전후가 된다. 종합하면 나꼼수 방송이 23일 정오에 녹음된 것이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정봉주 전 의원 측은 나꼼수 방송 녹음시각에 대해 설명할 경우 알리바이가 완벽해지는데도 기자회견에서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정 전 의원은 “나꼼수 방송 녹음 시각은 우리 측에서 주장하는 것이 정확한 당시 시각이다”며 “나머지 자세한 내용은 변호사와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 민국파와 운전자 진실 밝힐 핵심 키
정봉주 전 의원은 정대일 씨가 12월 23일 자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전면 부정했다. 하지만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핵심관계자는 “당시 정대일 씨와 신 아무개 씨가 정 전 의원을 수행했던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운전은 신 씨가 했다. 최근 연락을 취해봤더니 7년 전이고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23일 렉싱턴 호텔에 갔었는지 여부 자체를 기억 못한다”고 말했다.
정봉주 전 의원 지지자들은 정대일 씨의 폭로가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대일 씨는 정봉주 전 의원의 팬카페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카페지기로 활동해왔다. 2011년 12월 23일 오후 2시 17분 정대일 씨는 미권스 홈페이지에 정 전 의원의 옥바라지를 위한 모금행사 공지글을 올렸다. 정대일 씨가 렉싱턴 호텔 앞에서 대기하며 이 글을 올리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공방이 일었다. 하지만 2011년 5월에 이미 테더링을 이용해 외부에서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졌다. 정 씨가 정봉주 전 의원을 기다리며 미권스에 글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
정 전 의원과 정대일 씨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운전을 맡았다는 신 씨 역시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 진실공방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 관계자는 “성추행 의혹의 진위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 전 의원이 이미 A 씨를 누군지 특정하는 것 자체에서 여권에서도 방어하기가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봉주 전 의원 측 변호인단은 16일 결백을 입증할 사진 780장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증거로 23일 오전 11시 54분에 촬영됐다는 사진 1장을 우선 제시했다. 이 사진에는 나꼼수를 녹음하기 직전 스튜디오에 모인 정봉주 전 의원과 멤버들이 나와 있다. 이 사진으로 변호인단은 23일 오전부터 저녁까지 정 전 의원의 알리바이 모두를 완성했다.
‘프레시안’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정 전 의원을 16일 맞고소했다. 프레시안은 “보도의 본질은 정치인 정봉주와의 ’진실 공방‘이 아니고 피해자의 외침이 사실로 입증되어 가는 과정”이라며 “그럼에도 정 전 의원은 성추행한 사실을 부인하며, 피해자에게 시간과 장소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기억해내라고 다그쳤다. 고소는 전적으로 정봉주 전 의원이 야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