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체제’ 방향은 그쪽인데 속도는 지지부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6년 12월 ‘최순실국정농단청문회’에 출석한 이후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요신문DB
#현대건설서 손 떼는 MK
오는 29일 열리는 현대건설 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 후보는 박동욱 사장, 이원우 부사장, 윤여성 전무다. 임기 만료되는 기타비상무이사인 정몽구 회장과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의 이름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동안 현대건설 사내이사는 대표이사가 유일했지만 이번부터는 경영임원으로만 사내이사 3명이 채워진다. 특히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전무 직급으로 사내이사에 오른 경우는 드물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상근은 아니지만 이사회 의결에 참여한다. 특히 최대주주인 현대차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대표이사 이상의 중량감을 가졌다. 특히 김용환 부회장은 MK의 최측근이자 그룹 2인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2011년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현대그룹을 상대로 막판 뒤집기를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2012년부터 MK와 함께 현대건설 이사회에 참여해왔다.
#두문불출? 건강이상?
MK는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한 이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직접 챙겨오던 그룹 시무식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도 ES가 대신 참석했다. MK 특유의 현장경영도 2년 넘게 ‘중단’ 상태다. 건강 이상설이 대두하는 이유다.
MK는 1938년 4월 19일 생이다. 내달이면 꼭 만 80세다. 1915년생인 정주영 회장은 만 72세 때인 1987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에게 ‘회장’ 직함을 허락한 것은 81세 때인 1996년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83세 때인 1998년 정몽헌 현대그룹 공동회장이 되면서다.
#정의선 체제로? 아직은…
재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MK와 가장 아꼈던 정몽헌 회장 사이에서 후계에 대한 갈등을 크게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정 명예회장 비서진 3인방은 정몽헌 회장을 지지하면서 MK와 갈등했다. MK는 아들이 ES뿐이다. 여성의 경영참여가 금지되는 집안이다. 형제다툼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주변에서는 다른 얘기도 나온다. MK가 고령으로 건강이 나빠지자 측근들이 ES체제로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중국과 미국 등 해외 주력 시장은 물론 국내에서도 고전 중이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풀이다. 현대차 소식에 정통한 인사는 “지금도 ES체제라는 말만 나오면 임원진이 초긴장을 한다. MK 측근들로서는 ES체제로 가면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커지는 정의선
MK는 2009년 기아차, 2014년 현대제철 이사회에서 빠졌다. ES가 그의 빈 자리를 채웠다. 현재 ES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4개사 등기임원이다. MK의 등기임원 임기는 현대차가 2020년 3월까지이며, 현대모비스와 현대파워텍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그러면 기아차와 현대제철에서는 MK의 뒤를 이었던 ES가 왜 현대건설 이사회에는 들어가지 않았을까. ES가 현대건설의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대주주기 때문이다. ES는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보유, 현대건설(38.625)에 이어 2대주주다. 아울러 ES가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도 현대엔지니어링의 3대주주(지분율 11.67%)다.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ES가 현대글로비스 및 현대엔지니어링 보유 지분을 활용해 후계구도를 완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이사회에도 MK 부자 등 특수관계인은 참여하고 있지 않다.
#주목할 주식은
MK가 현대건설 이사회에서 빠진 사실이 알려진 날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9% 급등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도 강세를 보였다. 반면 현대건설은 급락했다. 지배구조 개편 기대 때문이다.
당초 ES체제로의 전환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방안이 유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롯데지주처럼 주력사들이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다시 지주사들이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ES 지배구조 완성의 핵심이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도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곳이다. 주가가 오를수록 총수 일가에 유리하다. 반면 현대건설에는 총수 일가 지분이 없다. 그러면서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 가능성이 점쳐지는 곳이다. ES에 합병 비율이 유리해지려면 현대건설 기업가치가 현대엔지니어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게 좋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