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와인바’서 특별한 축배를
▲ 와인트레인을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승객들. 와인트레인은 매주 영동으로 떠난다. | ||
아주 이색적인 기차가 기적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포도의 최대 산지인 충북 영동으로 떠나는 테마기차가 그것. 사실 특정 시즌만 되면 기차여행이 기획상품으로 출시되는 경우는 흔했다. 하지만 연말연시에 떠나는 정동진 해맞이기차라든가 태백산과 환선굴 등으로 떠나는 환상선 눈꽃기차 등과 이번에 생긴 ‘와인트레인’은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
우선 와인트레인은 한시적 여행프로그램이 아니다. 서울과 부산에서 연중 매주 세 차례 영동을 향해 출발한다.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횟수도 점차 늘릴 예정이다. 기차는 승객들을 위해 특별히 리모델링됐다. 새마을호 객실 2량 내부를 포도나무 터널과 포도주를 숙성시키는 오크통 등으로 장식, 토굴 분위기가 나도록 했다. 한편에는 바처럼 차창 쪽으로 길게 테이블을 설치했다. 하나의 움직이는 고급 레스토랑이 탄생된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와인 시음은 물론 각종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2시간 40분 동안의 기차여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기차여행의 설렘은 사람들의 얼굴에 묻어난다.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는 영등포역과 수원역을 거치는 동안 다소 흔들거렸지만 수도권을 벗어나면서 안정감을 되찾는다. 와인트레인을 운영하는 국산 와인 제조업체 와인코리아 직원들이 각 테이블마다 직접 빚은 와인을 따르기 시작한다.
첫 와인은 달콤한 스위트와인. 1~2년 동안 숙성된 것으로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그러다보니 와인을 음료 마시듯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와인은 눈과 코와 입으로 마시는 ‘천상의 술’이다. 눈으로 색깔을 음미하고 코로 향기를 마신 후 입으로 맛을 본다.
와인을 따를 때는 잔에 3분의 1 정도만 채운다. 나머지 3분의 2의 공간은 잔을 기울여 색상을 관찰하고 흔들어 향을 맡아보기 위해 필요한 여유 공간이다. 그리고 와인잔은 받침 부분을 잡는 것이 좋다. 손의 체온으로 인해 와인의 온도가 변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좋은 와인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보면 된다. 일단 와인을 따른 후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찬찬히 돌려보자. 포도주가 찰랑거리며 유리잔 안쪽을 스치고 난 후 잔의 벽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액체가 보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와인의 눈물’이다. 와인의 눈물이 많이 생길수록 또한 천천히 흘러내릴수록 좋은 와인이다. 와인을 마실 때는 목넘김을 한 뒤에 입으로 숨을 들이 쉰 후 코로 내뱉어보자.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와인 특유의 향이 코를 통해 빠져나가며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 토굴에서 숙성되는 와인. 오른쪽은 포도밟기 체험을 하는 여행객들. | ||
누보 와인에 이어 드라이와인까지 제공되는 동안 기차에서는 작은 연주회가 열린다.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은 듯한 오카리나와 경쾌한 선율의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등의 악기가 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여기저기서 앵콜 요청이 쏟아지고 제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은 사람들은 기차가 철로 위를 달리는 내내 술잔을 기울인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술안주로 제격이다.
정오가 다 되어 기차는 영동역에 닿는다. 여행객을 목적지로 싣고 갈 버스는 영동역에 이미 대기 중이다. 버스로 갈아타고 10분쯤 달려 찾아간 곳은 와인코리아 공장. 와인을 곁들인 점심식사를 마친 후 공장과 토굴 견학, 포도밟기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와인코리아는 영동군 내 우수 포도농민 550여 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1995년에 설립한 와인 제조 법인이다. 1997년 처음으로 와인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곳에서 현재 생산하고 있는 와인은 ‘샤또마니’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샤또’는 불어로 ‘고성’(古城)이라는 뜻이고 ‘마니’는 인근 마니산에서 따왔다. 그 이름을 따라 와인코리아는 영동 주곡면의 폐교를 고성 모양으로 리모델링해 본사로 쓰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스파클링 등 10여 개의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국산 와인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이제는 품질 면에서 인정을 받아 하루 5000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한다.
영동은 포도 수확기에 강우량이 적고 일조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일교차가 커서 포도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이 고당도의 초고급포도로 만든 샤토마니는 최적의 조건에서 숙성되면서 최상의 맛으로 탄생한다. 와인코리아의 숙성고는 토굴이다.
와인코리아는 영동읍 매천리 야산 토굴을 군으로부터 임대받아 샤토마니 숙성고로 활용하고 있다. 이 토굴은 높이와 폭이 3∼4m, 길이 56m로 일제가 1930∼1940년경 탄약을 저장하기 위해 마을사람을 동원해 만든 것들이다. 암반으로 덮여 있고 1년 내내 13℃의 온도와 80%의 습도를 유지한다. 3개의 토굴이 숙성창고로 이용되고 있는데 각 토굴마다 오크통 40여 개와 병에 든 와인 2000여 개가 숙성 중이다. 와인트레인을 타고 이 회사를 방문하면 천연토굴 숙성고를 견학하고 잘 숙성된 와인도 맛볼 수 있다.
한편 와인트레인은 갖가지 체험도 겸한 여행프로그램이다. 공장 견학시에는 와인의 제조과정 중 포도밟기를 해볼 수 있다. 커다란 오크통에 포도를 가득 넣고 자근자근 밟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장 견학이 끝난 후에는 난계 박연 선생을 기리는 국악박물관 투어도 진행되는데 이곳에는 즐거운 소리체험이 기다린다. 꽹과리, 징, 장고, 북 등 사물이 비치돼 있고 전문가로부터 악기도 배울 수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울역에서 매주 화·토요일 오전 9시 20분, 부산역에서 매주 목요일 오전 9시 5분 와인트레인 출발.
★문의: 와인코리아(http://www.winekr.co.kr) 043-744-3211
★비용:1인 5만 9000원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