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대나무숲’ 사례 공개, 아빠 오빠 사촌오빠 큰아빠 등 참담한 피해 주지만 ‘가족’이기에...
2018년 3월 19일 페이스북 페이지 ‘미투 대나무숲’의 한 회원은 “엄마 아빠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엄마 아빠가 미투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들었어. ‘여자도 XX 아니냐’라고 말했지”라고 밝혔다.
이 회원은 이어 “근데 그거 알아? 나도 8살 때 성폭행 당했어, 엄마 아빠도 아는 사람이야. 큰아빠 아들”이라며 “큰집에서 사촌 오빠 옆에 누워 잤는데 그 사람이 내 XX을 만졌어. 그럴 때마다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피해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 몸을 숨겼어”라고 고백했다. 사촌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미투 대나무숲’에 나타난 사연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범죄는 주로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명절에 일어나는 경향이 강하다. 2018년 3월 6일 ‘미투 대나무숲’의 다른 회원은 “명절날 친척들로 큰집이 북적이면,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라며 “19살 때 저는 사촌오빠가 자는 방 침대 밑에 바닥에서 잤습니다. 자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 때문에 눈을 떴는데 위에서 내려온 손이 숨을 헐떡이면서 제 가슴을 만지고 있었습니다”고 전했다.
‘패밀리 미투’ 운동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미투 운동과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피해자가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을 밝히거나 적극적으로 언론에 고발하는 형태는 아니다. 가족이나 친족에게 당한 기억을 릴레이 형식으로 SNS 게시판에 털어놓는 방식이다.
조은희 한국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가족을 향한 미투 운동은 일반적인 미투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피해자가 적극적인 미투 운동을 벌이는 순간 자신도 함께 주목 받고 친척관계를 전부 알려야 한다”며 ”피해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여지도 적다. 가족이 아니면 직접적으로 도와주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투 대나무숲’ 게시글 캡처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1년간 누적된 상담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람인 경우는 2006년 83.5%에서 2016년 87.1%까지 비중이 늘어났다. 친족 성폭력 범죄 상담건수는 2016년 137건을 기록했지만 법적 대응으로 이어진 사례는 6건(4.3%)에 불과했다.
‘암수율(드러나지 않는 범죄 비율)’이 원인이다. ‘패밀리 미투’가 익명성을 보장하는 대나무숲을 중심으로 이뤄질 뿐,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문 까닭이다. 법무법인 ‘우리’의 양제상 변호사는 “친족 성범죄는 암수가 많다”라며 “먄약 아빠에게 당한 딸은 엄마한테 제3자한테 말하기 어렵다. 엄마와 아빠가 관계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친족 성범죄는 은밀하고 상습적으로 일어나지만 피해자들은 평생 마음에 담아 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18년 3월 6일 ‘미투 대나무숲’의 한 회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자다가 짓눌리는 기분에 눈을 떴는데 술 취한 아빠가 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깬 엄마가 아빠를 데리고 거실로 나갔습니다”며 “두 분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이 다툼 때문에 저는 십 수년이 지나서야 피해를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미투 대나무숲’ 게시글 캡처
이처럼 ‘죄책감’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조은희 활동가는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가정이 깨질 수 있다. 아빠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면 더욱 말하기 어렵다”며 “아빠의 지원이 끊기면 엄마는 남편 없이 살아야 한다. 자신 때문에 가정이 깨질 것이란 생각 때문에 피해자들은 입을 닫아버린다”고 지적했다.
다른 회원은 2018년 3월 3일 “7살 때, 모두가 자는 밤에 속옷 속으로 아빠의 손이 들어왔습니다”라며 “강도와 수위는 점점 세졌는데 그 다음 속옷을 벗겼습니다. 이런 행위는 19살까지 이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회원은 가족들에게 성폭행 피해를 말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가부장적인 문화도 ‘패밀리 미투’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앞서의 양제상 변호사는 “한국 사회의 가정 문화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딸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면 엄마는 딸을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친족을 고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무마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투 대나무숲’에선 이같은 사연도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3월 14일 ‘미투 대나무숲’의 한 회원은 “중학교 시절 외가에 놀러간 날, 친할아버지께서 제 가슴을 만지면서 ‘오, 가슴 되게 크네?’라고 했습니다”라며 “할아버지가 가슴을 주물러도, 가족들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수치심이 일어나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가슴을 만졌어’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라고 밝혔다. 할아버지의 권위 때문에 가족들이 성폭력 피해자의 외침을 무시한 것이다.
‘패밀리 미투’ 사연의 또 다른 특징은 피해자들이 어릴 때 범죄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유년기 시절 가족에게 성폭력을 당하면 피해가 왜곡될 수 있다. 일종의 ‘그루밍’(길들이기·Grooming) 수법에 의한 성폭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루밍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여 성폭력을 용이하게 하거나 은폐하는 행위’다.
‘그루밍’은 교묘한 방식으로 성범죄를 합리화한다. 2018년 3월 13일 ‘미투 대나무숲’의 다른 회원은 2018년 3월 13일 “21년 전 집은 비디오가게를 하고 있었고, 집에 성인물 비디오가 들어왔습니다”며 “호기심에 못 이겨 오빠와 저는 비디오를 보게 됐습니다. 바로 성추행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13살 오빠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고, 점차 제 몸에 손을 댔습니다”고 설명했다.
신문희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은 “친족 성폭력은 그루밍을 전제한다.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예뻐하면서 추행이 일어난다. 가해자가 피해 아동을 길들이는 과정 속에서 피해 아동이 피해를 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점은 나중에 가해자를 비난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심지어 피해 아동이 나중에 ‘내가 좋아서 했다’면서 진술을 번복하거나 축소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의 비난 역시 ‘패밀리 미투’가 침묵하는 배경이다. ‘미투 대나무숲’의 한 회원은 3월 19일 “사촌오빠에게 사과를 받아서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마음에 상처로 남은 말 한 마디가 있습니다”며 “‘그러길래, 왜 거길 들어가서 잤어’라는 사촌 오빠의 엄마인 큰 엄마의 말 한 마디입니다”고 토로했다.
조은희 활동가는 “친족 성범죄의 맹점이다. 가족들은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거나 피해자가 피해를 유도했다는 식으로 반응한다”며 “심지어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협박할 때도 있다. 용서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죄책감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결국 가족 내에서 외톨이가 된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