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후보 추대해준대도 ‘NO’…1년 전 집권당의 굴욕
지방선거 인물난과 관련해 자유한국당(한국당) 당직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제1야당인 한국당이 극심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당초 영입을 추진한 홍정욱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까지 연이어 불출마 선언을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월 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일각에선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후보로 거론되지만 본인은 미지근한 반응이다. 서울이 지역구인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도 출마 의사를 보이는 사람은 없다. 한국당 내에서는 이러다 지방선거 메인 경기인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도 못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내에선 홍 대표가 직접 출마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왔지만 홍 대표 본인도 출마를 거부했다. 불과 1년 전 집권여당이었던 한국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조차 내지 못한다면 대굴욕이다.
한국당은 17개 광역단체 중 8곳에 대해서는 경선도 치르지 않고 전략공천을 했다. 경선을 실시할 만한 마땅한 후보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전략공천을 발표한 광역단체장 후보는 경기(남경필 경기지사), 인천(유정복 시장), 강원(정창수 전 국토해양부 1차관), 대전(박성효 전 의원), 부산(서병수 시장), 울산(김기현 시장), 충북(박경국 전 행정안전부 1차관), 제주(김방훈 제주도당위원장) 등이다.
특히 경기지사와 부산시장의 경우는 민선제가 도입된 이후 한국당이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는 텃밭임에도 마땅한 후보가 나타나지 않아 경선 없이 현 남 지사와 서 시장을 전략공천했다.
홍 대표는 지난해 11월까지만 하더라도 ‘2018 지방선거 필승 결의 대회’에 참석해 “밤잠 안자고 뛰어서 당선시킨 경기지사가 도망을 가고 가출을 했다. 이제 경기도 책임자를 새로운 사람으로 해야 한다”면서 “배신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여러분(당원)을 위하는 경기도 책임자를 꼭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던 남 지사를 공개 비판한 것이다.
홍 대표는 서병수 시장에 대해서도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는 현역을 신인과 경선에 부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본선에서 이길 가능성도 없다”며 여론조사 지지도가 낮은 서 시장을 사실상 배제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실제로 한국당 인재영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홍 대표는 경기와 부산에 새로운 후보를 내기 위해 여러 인물들과 접촉했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재영입에 실패한 당 지도부가 결국 현역 프리미엄이라도 있는 남 지사와 서 시장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당은 인물난 끝에 이완구 전 국무총리, 이인제 전 의원 등 이른바 올드보이들을 지방선거에 출마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현재 지방선거 인재영입은 인재영입위원장인 홍 대표가 전적으로 도맡아서 하고 있다”면서 “일부 영입대상자가 언론에 먼저 공개되는 바람에 영입이 무산된 사례가 있어 이후에는 보안이 더 철저해졌다. 홍 대표와 주변 핵심 측근들 외에는 인재영입을 위해 어떤 인물과 접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 대표가 지난해 12월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후 눈에 띄는 인재영입은 지난 3월 9일 입당한 배현진 전 MBC아나운서가 거의 유일하다.
한국당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낮은 지지율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3월 22일 발표한 정당 지지율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지지율은 55.3%로 나타났고 한국당은 21.1%를 기록했다(지난 3월 19~21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3만 6427명에게 접촉해 최종 1501명이 참여했고 응답률은 4.1%를 나타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일각에선 낮은 지지율보다 홍 대표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직 한국당 의원은 “탄핵 사태 이후 보수 전체의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재 상황까지 당이 몰린 것은 홍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직 의원은 “홍 대표의 품위 없는 말과 독선적인 행태로 기존 보수 지지층마저 우리 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지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보수가 똘똘 뭉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나 차떼기 사건 후에 치러진 선거에서도 우리 당이 선전하지 않았나. 그런데 홍 대표 체제에서 보수가 뭉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 전직 의원은 “지방선거가 끝나면 홍 대표 체제가 흔들릴 텐데 지금 한국당에 영입되면 홍준표 계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홍준표 키즈, 홍준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정치 활동하는 동안 따라다닐 것 아닌가. 앞으로 정치를 길게 하고 싶어 하는 경쟁력 있는 인물들은 홍 대표와 연관되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는 3파전 구도가 예상돼 영입대상자들이 출마를 꺼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서울시장 선거에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다. 3자 대결 시 한국당 후보가 득표율 15% 넘지 못하면 선거 비용을 절반밖에 돌려받지 못하고, 득표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면 선거 비용 보전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한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면 아무리 절약해도 수십억 원의 선거비용이 든다. 서울시 자치구가 25개인데 구마다 유세차 한 대씩만 돌려도 얼마냐”면서 “양자구도라면 아무리 한국당이 망가졌어도 득표율 15%를 넘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3자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자칫 후보 개인이 수십억의 빚을 떠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던 모 인사는 당과 선거비용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이 인사는 출마를 결심할 경우 선거비용 상당액을 당에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국당이 거절하면서 영입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최근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당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한국당이 인재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홍 대표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홍 대표 측 관계자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서울시장에 출마했으면 좋겠다”면서 “일부 인재영입에 실패한 것을 당 대표 때문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원래는 당 대표뿐만 아니라 중진 의원들도 인재영입 역할을 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의 평소 막말과 독선적인 당 운영 논란에 대해서는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앞으로 고쳐나갈 거다. 하지만 그런 불만이 있으면 당 중진 분들이 홍 대표를 만나 이야기하면 되는데 다짜고짜 언론에다 말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조언이라고 본다”면서 “홍 대표도 그런 지적에 대해 고칠 의향이 있고 앞으로 고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