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전소민이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엔터테인먼트 아이엠 제공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크로스’에 함께 출연했던 조재현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불명예 하차했다. 이에 대한 질문이 빠질 수 없었다.
전소민은 “(조재현의 퇴장은) 기존에 정해져 있던 스토리를 조금 앞당겼을 뿐, 스토리 진행상 문제가 되거나 내부적으로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일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드라마 후반부를 달려오면서 제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시청자들에 대한 책임감이 컸기 때문에 일단 제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마음이 좋지 않고 안타깝기는 했지만 무사히 제 몫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영화계를 이어 연예게 전반으로 이어진 사회적 이슈 ‘미투 운동’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전소민은 “어떤 직업을 가진 여성분들에게라도, 사회 활동을 하면서 어디에서든지, 공공연하게, 고질적으로 일어나던 문제”라고 사회 전반에 스며든 성폭력 문제를 짚었다.
그는 또 “그런 상처를 용기 있게 얘기해 주신 분들 덕에 저희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앞으로 조금씩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한 것만으로도 그 변화 자체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분들께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했다.
전소민이 ‘크로스’에서 열연한 고지인은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 각별히 사랑하는 아버지 고정훈(조재현 분)을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간직한 캐릭터다. 고경표, 조재현과 함께 주연 3인방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남성 중심의 장르물에서 존재감이 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랐다.
이에 대해 전소민은 “저는 사실 주연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극의 주가 되는 것이 경표 씨의 이야기고, 저는 서브를 해주는 느낌이었다. 제 역할을 잘 알고 들어왔기 때문에 존재가 약하다거나 역할에 대해 서운하다던가 하는 생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로 꼽히는 일일드라마나 아침 드라마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그였다. 그러다보니 ‘일드(일일드라마), 막드(막장드라마) 전문 배우’라는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기도 했다. 그런 전소민에게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은 그의 이미지를 탈피시켜줄 돌파구가 됐다.
사진=엔터테인먼트 아이엠 제공
발랄함이 지나쳐 독특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것에 대해서는 “제가 독특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제 나이 또래에 맞는 평범하고 어디에나 있는 친구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발랄하고 거침없는 그지만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고민도 많다. 아직까지 다음 작품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은 것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가장 하고 싶다는 ‘트렌디 로맨스’ 작품에 대한 러브콜이라면 버선발로 나가 마중할 준비가 돼 있다. 한편으로는 어린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는 연예계에서 서른셋이라는 나이가 로맨스 물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지 초조해 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그의 걱정을 날려버린 것이 최근 방영 중인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였다. 어른들의 멜로 드라마도 시청자들의 호응 속에서 시청률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을 보고 “아, 초조해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느꼈다는 것.
“멜로드라마를 찍으려고 연륜과 경험으로 다져진 사랑을 준비해 왔어요. 서른세 살이니까 그런 준비라면 많이 해온 셈이죠(웃음). 아직 해보지 못한 역할도 많고, 해보고 싶은 역할도 많아요. 어떤 역이 들어오든 감사하게, 다양하게, 모두 다 열심히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제 새로운 출발선이었던 ‘크로스’ 이후에 또 다른 출발선에 오르기 까지 정체되지 않고 좀 더 많은 걸음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