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은행 전 지점장 “계약서는 대출 진행 보조자료일 뿐”
서울의 한 A 은행 지점장이었던 B 씨(56)는 2015년 초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상가 건물에 관심이 갔다. 인근 상가가 20억 원 후반대 시세를 기록하는 중이었는데 B 씨가 본 매물은 이에 비해 30%가량 낮은 19억 원이었던 까닭이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취등록세와 부동산 중개비 등 기타 비용까지 고려하면 최소 21억 원이 필요했다.
19억 원 부동산의 담보대출 한도 60%인 11억 4000만 원은 걱정이 안 됐다. 나머지 40%인 7억 6000만 원이 문제였다. 도합 1억 원을 넘나드는 취등록세와 부동산 중개비도 적지 않았다. B 씨는 허위계약서와 자신의 형 신용도를 이용했다. 20억 원 후반대의 주변 시세와 전문감정기관에서 내린 감정가 26억 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B 씨의 형은 대기업 임원으로 10년 가까이 재직했던 사람이었다.
B 씨는 매매가 19억 원보다 9억 원이 더 적힌 28억 원짜리 허위계약서를 부동산을 거쳐 받았다. 이 허위계약서로 부동산담보대출금액 15억 5000만 원이 B 씨 형 명의의 사업자계좌로 입금됐다. 형 명의로 신용대출 5억 5000만 원도 추가됐다. 합계 21억 원은 2015년 4월 27일 A 은행에서 B 씨 친형 사업자 계좌로 이동했다. 2015년 3월 26일 계약금 1억 5000만 원을 주고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었던 B 씨는 한 달 뒤 대출받은 돈으로 잔금 17억 5000만 원을 매도인에게 지급했다. 상가 건물을 손에 넣었다. 2016년 10월 7일 B 씨는 한 법인에게 이 상가 건물을 27억 원에 팔았다. 1년 반 만에 B 씨는 자신의 형 명의로 샀던 상가 건물을 8억 원이나 비싸게 팔았다.
B 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허위계약서는 내부에서만 사용돼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B 씨는 “계약서는 은행에서 대출을 진행할 때 품의서 같은 거다. 쉽게 말해 보조자료 정도밖에 안 된다. 전문감정기관의 감정 자료가 대출의 근거가 된다. 담보로 대출을 60% 정도밖에 안 해주기 때문이다. 19억 원짜리 상가 사는 데 21억 원이 필요해서 내부품의에 쓰려고 만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를 지켜 본 한 금융권 인사는 은행에도 최소한의 친족 거래 통제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원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내부의 거래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고 특정 거래에 자주 편입되는 회계법인이나 혹은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 상품을 사고 파는 금융회사는 친족 관련 규정이 매우 엄격하다. 일부 회사에서는 배우자나 가족의 통장, 주식 거래내역을 조회할 수 있도록 전직원에게 동의서를 받기도 한다. 친족 사이의 차명 거래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한 업종 특성 탓”이라며 “은행권은 이에 대한 촘촘한 통제가 부족하다. 실제 주식 거래 등 정보에 기댄 금융 수익보다 대출을 이용한 임대 수익이 좀 더 안정적이다. 불확실한 금융 상품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반면 임대 수입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은행권의 변화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A 은행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A 은행 출신 인사는 “A 은행은 담보부동산의 추정액이 20억 원을 초과하면 협약을 맺은 감정평가법인의 평가자료를 쓴다. 본사에서 무작위로 감정평가법인을 선택할 수 있게 했지만 한계는 명백하다. 아무리 무작위더라도 지점장쯤 되면 감정평가법인과 인연을 만들어놓기가 어렵지 않다. 감정금액을 올려 감정평가서가 나오도록 하는 일도 빈번하다. 실제 거래 금액보다 높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만드는 것도 자주 봤다. 기천만 원 혹은 1억~2억 원 정도 가격을 부풀려 서류를 꾸미는 건 아주 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두 명이 유착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점장과 부하 직원, 본사 직원도 알음알음 일 처리를 눈감아 주는 일이 태반이다. 부동산담보대출뿐만 아니다. 가족 포함 일반 고객 신용대출은 8000만 원을 넘으면 지점장 권한을 벗어난다. 본부부서의 심사를 거쳐야 대출이 실행되고 심사 역시 까다롭다. 다만 지점에서 대출 관련 의견이나 관련 서류를 부풀려 쓰고 본사에서 이를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다. 지점장이 본인의 지위를 남용한 사례는 온 지점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 외에 상가 건물도 사후 관리 대상이 돼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A 은행 직원은 “개인의 신용대출은 최초에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간 고객에게 문제를 삼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단 정부의 부동산대출규제로 개인이 본인 또는 타인의 주택을 구입하는 용도로 신용대출을 이용하면 사후 관리를 한다”면서도 “문제는 상가 건물 담보 대출에 대해서는 감시가 느슨하다는 점이다. 상가 건물은 대출 뒤 별도의 사후 관리를 하지 않는다. 지난해 8·2 부동산대책 때문에 상가 건물 등 수익형 부동산이 각광 받고 있다. 이제는 좀 더 체계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 씨 역시 인정했다. B 씨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많다. 특히 부동산 관련 거래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A 은행 관계자는 “가족에게 대출해주는 건 제한이 없다. 다만 대출이 나간 뒤 사후에 문제가 생기면 대출 대상이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이면 가중처벌된다”며 “그 외 내부규정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현재 이 사건 관련 이해관계자들을 조사 중에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은행 대출 허점…대출 많이 받으려 ‘업계약서’ 작성 횡행 허위계약서는 고위급 인사의 발목도 자주 잡을 정도로 흔한 관행이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2014년 다운계약서 논란으로 임명에 진통을 겪었고 2014년 5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목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업계약서 문제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보통 허위계약서는 다운계약서와 업계약서로 이뤄져 있다. 폭등한 지역 부동산 매매에서 양도소득세를 피하려고 자주 사용되는 게 다운계약서다. 매도인이 매매금액을 실거래액보다 낮게 적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업계약서는 매매가를 실제 거래가보다 높여 작성한다. 보통 분양자가 미분양 부동산을 할인해서 판매할 때 이미 정상가를 주고 입주한 사람들의 반발을 피하려 작성된다. 업계약서는 세금이 올라가지만 분양자가 올라간 세액보다 더 많은 할인을 적용해주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매도자와 매수자, 중개인 사이의 부동산 거래만 조명돼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쉽사리 고쳐질 수 없다는 점이다. 업계약서는 미분양과 할인 분양뿐만 아니라 은행 내부에서 높은 대출을 받을 때 자주 사용된다는 은행 관계자의 증언이 잇따른다. 은행 내부에서 부동산담보대출 관련 업계약서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감시 체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 내부 통제 문제로 본다. 금융감독원에는 임대사업자 등 사업자 대출이 나간 뒤 실제 자금 용도를 확인하도록 내부 규정을 마련해놨다. 은행은 이에 따라 현장 확인이나 대출 나간 돈이 실질적으로 그 용도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토록 규정돼 있다. 최근 사업자 대출이 증가 추세에 있어서 이와 관련된 제도와 점검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