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사 봄
“넌 나에게 목욕 값을 줬어.”
<달콤한 인생>을 감명 깊게 봤다는 말에 상대방은 처참한 농담을 던졌다. 대학생이 된 뒤 처음으로 한 소개팅이었다.
2005년 4월 1일, <달콤한 인생>이 개봉했다. 당시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등의 작품으로 주목받던 김지운 감독이 내놓은 첫 느와르였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선우(이병헌)는 냉혹한 보스 강 사장(김영철)의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선우는 희수가 새로운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하지만 망설임 끝에 그들을 놓아준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선우는 조직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강 사장과 조우한 선우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 봐요”라며 강 사장을 다그친다. 이 때 강 사장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답한다. 10년 넘게 유행하는 명대사로 꼽힌다.
사건의 발단은 선우가 희수와 새로운 남자친구를 놓아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선우는 왜 그들을 풀어줬을까. ‘사랑했기에’라는 답을 먼저 적어 놓고선 ‘스탠드’에서 힌트를 얻었다. 강 사장은 희수에게 스탠드를 선물하지만 희수는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선우는 희수가 눈 여겨 보던 스탠드를 선물한다. 이는 보스에 대한 도전으로도 풀이된다.
이 외에도 선우와 희수는 식사를 하면서 ‘강 사장과 왜 만나냐’ ‘해결사냐’는 사적인 질문을 주고받는다. 또 첼로를 전공하는 희수는 ‘로맨스’를 연주한다. 선우는 희수의 연주를 들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활짝 웃는다. 선우가 희수에게 끌리는 이유로 해석된다.
선우의 나레이션이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우의 달콤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목욕 값이라니) 저한테 왜 그랬어요?” 물론 난 그 뒤로 소개팅을 하지 않는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