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 본격 거론…‘무혐의’ 처분 받은 인사들도 재수사 대상 될 전망
# “장자연 리스트, 다시 열어봐야 아무것도 없다”
‘장자연 사건’은 연예계에서 시작돼 사회적으로 파장이 확대된 사안인 데 반해 연예계에선 생각만큼 파장이 크지 않다. 애초 신인 여배우의 자살로 시작됐던 이 사건은 이후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문건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폭발적인 화제를 양산해냈다. 문제는 해당 문건이 불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그 일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돼 KBS를 통해 보도되면서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2009년 3월 9일 고 장자연 발인 장면. 일요신문DB
따라서 문건의 핵심인 소위 ‘장자연 리스트’는 애초부터 경찰이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사가 진행됐다. 그만큼 별다른 수사 성과도 없었다. 4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진행됐지만 별다른 혐의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매일 아침 사건 브리핑을 할 만큼 대대적으로 진행된 당시 분당경찰서의 수사는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사건 초기 엄청난 화제와 관심에 비해 너무 초라한 수사 결과는 의혹과 음모만을 남겼고 그 부분이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당시 고인이나 고인의 소속사, 그리고 전 매니저 등과 관계된 연예관계자들을 통해 여러 가지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연예계에선 경찰 수사 초기부터 이미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기본적으로 경찰이 입수한 4매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얘기가 지배적이었으며 7매를 모두 봤다는 연예관계자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알려진 것처럼 뭔가 엄청난 리스트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고인이 문제의 문건을 남긴 까닭부터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기자가 최근 다시 당시에 이 사건을 취재했던 관계자들과 접촉해본 결과 상당수는 여전히 “재수사를 해도 나올 게 거의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 장자연 리스트보다 무서운 경찰 수사 기록
그렇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얘기도 있다. 사안의 핵심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된 경찰의 수사 기록에 뭔가 폭발력이 잠재된 내용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당시 수사는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사안인 터라 연예매체들뿐 아니라 일간지와 방송국 사회부가 대거 투입됐다. 분당경찰서는 매일 오전 수사브리핑을 했고 그때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언론의 취재력까지 집중되면서 언론 보도가 경찰 수사를 앞서가기도 했다. 언론의 관련 단독 보도에 경찰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대대적인 수사치곤 결론이 너무 초라했다. 수사 대상에 오른 20명 가운데 구속된 것은 단 2명으로 고인의 소속사 김종승 대표와 전 매니저 유 대표다. 5명은 불구속 입건, 13명은 불기소(6명) 또는 내사 종결(7명)로 처리됐다. 수사 선상에 오른 20명 가운데 고인의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 그리고 사자명예훼손으로 피소된 기자 2명 등을 제외한 16명이 강요죄 공범과 강제추행 등의 혐의를 받았다.
‘강요죄 공범’으로 수사 대상이 된 이들 가운데에는 7명이 감독이며 금융인 3명, 언론인 3명, 기업인 1명, 기획사 1명 등이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강요죄 공범’으로 불구속 입건된 이는 3명뿐이며 강제추행 혐의의 금융인도 불구속 입건됐다. 나머지는 불기소 또는 내사중지로 마무리됐다. 특히 ‘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5명은 모두 내사종결로 마무리됐다. 그나마 경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 대상이 된 8명 가운데 5명이 불구속 입건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렇지만 분당경찰서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불구속 입건된 5명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결국 2009년 당시 검경 수사는 고인의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 단 두 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종결됐다.
그렇다고 수사가 대충 진행되진 않았다. 워낙 전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경찰이 대대적으로 투입된 데다 언론의 특종 경쟁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4개월 넘게 진행된 수사는 압수수색 27회, 통화내역 조회 14만여 건, 계좌 및 카드 사용내역 조회 955건, 참고인 118명 조사 등으로 방대했다. 당시의 수사 기록에 여전히 뭔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분명 존재한다.
2009년 당시 한풍현 분당경찰서장이 장자연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근 검찰 재수사가 임박하면서 언론을 통해 당시 수사 기록에 담긴 내용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특히 2009년 당시 가장 화제가 됐던 ‘조선일보 방 사장’ 관련 대목의 경찰 수사가 미진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경찰은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기록에 따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조사했지만 알리바이가 확실했다”며 “고인이 청담동 중식당에서 함께 만난 당시 관계사 사장 A 씨를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렇지만 발표 내용과 달리 당시 수사 기록에는 ‘고인과의 식사 자리는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 주재했다’고 기록돼 있다고 KBS가 단독 보도했다. 그럼에도 당시 경찰은 방용훈 사장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은 수사 기록에는 남겨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사자에 대한 조사까진 진행하지 않았고 수사 브리핑에선 엉뚱한 내용만 발표했다.
경찰 수사 기록에는 미심쩍은 리스트도 하나 들어 있다. 이른바 ‘고액 수표 입금자 명단’이다. 2009년 당시 경찰은 고인과 가족의 금융거래도 꼼꼼히 들여다봤다. 계좌와 카드 등 950여 건을 확인한 경찰은 고인과 가족의 계좌에 백만 원권 이상 고액 수표가 수십 장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입금 총액은 억 단위를 넘겼다. 고액 수표를 건넨 남성이 20여 명이나 되는데 이 가운데에는 유명 기업인과 고위 공무원 등 나름 폭발력을 가진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당시 경찰은 이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지만 대부분 대가성을 부정하며 용돈을 준 것일 뿐이라는 등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결국 이들에 대한 수사는 중단됐고 경찰 최종 수사 발표에서도 관련 내용은 모두 제외됐다.
기본적으로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는 2009년 당시 수사대상자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불기소’ 또는 ‘내사중지’로 처리한 13명은 재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5명은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경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5명은 모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들도 재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수사 과정에서 누락된 이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은 당시 수사 기록에서 언급이 됐으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최근 화제가 된 ‘고액 수표 입금자 명단’도 재수사 대상이 될 가성이 크다. 또한 무려 14만여 건이나 되는 통화내역 조회 과정에서 드러난 관련 인물들에 대한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얘기도 있다. 비록 최종 수사 결과에는 실리지 못했지만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은 여전히 상당 부분 남아 있다는 것. 이번 검찰 재수사를 통해 가려진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
진실 규명만큼이나, 아니 더 중요한 사자의 명예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검찰 재수사가 임박하면서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바로 고인이 된 장자연의 명예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그래서 어느 정도 당시의 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연예관계자들은 낸시랭과 결혼을 발표하며 또 다시 ‘장자연 편지’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전준주(왕진진) 씨에게 강한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이미 한 번 가짜 편지로 고인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한 전 씨가 또 다시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직접 장자연 문건까지 봤다는 한 연예관계자의 말이다. 일요신문DB “당시 공개돼 가짜로 판명된 장자연 편지는 고인의 명예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왕진진이라는 이가 필적을 흉내내 자신의 상상으로 이상한 내용의 편지를 만들어 냈고 이로 인해 고인을 그런 엄청난 일을 겪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고인이 연예계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는 부분은 사실이지만 그 가짜 편지는 너무 과장되고 비현실적입니다. 그런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고인은 수년 동안 어마어마한 일을 당한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고인은 실제 벌어지지도 않은 일까지 모두 연루된 사람이 돼 엄청나게 명예가 훼손됐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나 또 이상한 편지를 들고 그걸 공개하겠다며 이미 가짜로 판명된 편지도 다 사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정말 심각한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입니다.” 실제로 전 씨는 낸시랭과의 결혼 발표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그 자리에서 또 다시 새로운 ‘장자연 편지’를 공개했다. 최근에는 낸시랭이 SNS를 통해 장자연 편지는 위조되지 않았다며 남편 전 씨의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요청했다. 그렇지만 과거 전 씨가 공개했던 두 번의 장자연 편지는 수사기관을 통해 모두 위조로 판명됐다. 장자연 사건을 검찰이 재수사하는 것을 바라보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 역시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상황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의 제목은 ‘고 장자연의 한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이다. 그렇지만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고인의 명예가 다시 한 번 훼손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우려의 얘기도 들려오는 것. 한 연예관계자는 “장자연 편지 소동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사회가 시끌시끌했지만 결국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예만 다시 한 번 심하게 훼손되고 마무리됐다”면서 “검찰이 재수사를 한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끝을 내줘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괜시리 사회적인 이슈만 양산하다 결국 고인의 명예를 다시 훼손하고 수사가 모호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얘길 들려줬다. 유가족 역시 검찰의 재수사 소식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09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동생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을 고인의 언니와 오빠는 한동안 집까지 몰려든 엄청난 취재진으로 인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고인과 친분이 있던 연예관계자들은 검찰의 재수사 소식을 반기면서도 유가족이 또 다시 상처를 입게 되지 않을지 걱정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