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여부 관계없이 권력집단 잘못된 문화에 경종” 의미…재수사 배경 놓고 음모론 횡행하기도
2009년 3월 9일 고 장자연 발인 장면. 일요신문DB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미 사건 관련자 대부분의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점이다. 수사를 통해 뭔가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는 데다 행여 검찰이 뭔가를 어렵게 밝혀낼지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럼에도 검찰은 재수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이어지는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반드시 기소를 해야 하는 게 과거사위원회의 목적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납득을 받지 못한 사건을 다시 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자연 리스트 수사는 당시 ‘권력 집단’의 잘못된 문화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주요 언론사와 대기업 오너 등이 거론된 사건이다.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문제는 이런 재수사는 검찰이 스스로 당시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부분을 시인하는 형태로 비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사위원회의 검토를 통해 재수사가 결정되는 사안일지라도 재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검찰 내부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고 장자연 사건의 경우 검찰 입장에서도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수사를 담당한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부장검사가 고교 동창에게 스폰서를 받은 혐의로 사법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당 검사는 구속 기소된 이후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났다. 만약 당시 수사 검사가 아직도 검찰에 있어 고위직에 올라 있다면 재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검찰은 고 장자연 사건의 당시 수사를 검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 셈이다.
앞서의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는 향후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늦어도 2월에는 재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사위원회의 사건 결정은 1월 25일 전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때 1차 사건, 2월 초에 추가로 2차 사건을 선정하는데 지금 분위기로는 고 장자연 사건이 1차에 들어갈 가능성도 높다. 늦어도 2차 사건에는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정되면 대검찰청에서 재수사를 할 부분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사건 배당 등을 검토한다.”
2009년 당시 한풍현 분당경찰서장이 장자연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재수사가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 언론사를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음모론적인 시각은 연예계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또한 연예계에선 당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던 몇몇 대기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문제의 대기업들이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고 장자연 사건’이 요즘 검찰이 집중하고 있는 ‘적폐 수사’의 한 부분으로 확대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고 장자연 사건이 불거져 검경의 수사가 한창 진행될 당시 관련 의혹이 제기됐던 유력 인사 10여 명은 모두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워낙 대중적인 관심이 뜨거웠던 사건이지만 결국 리스트와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유명 인사들이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봐주기 수사’ 논란이 불거졌고 당시의 논란이 이번 과거사위원회 검토로 연결됐다.
검찰 내부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연예계에서도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준의 수사 결과가 나오긴 힘들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우선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장자연이 이미 사망했으며 그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 역시 그 일부가 남아 수사의 도화선이 됐지만 원본은 이미 사라졌다. 게다가 공소시효가 지날 만큼 이젠 오래전 사건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 제3자가 보관 중인 ‘장자연 리스트’ 사본이 새롭게 등장하거나 확실한 증인이 등장하는 등의 새로운 변수가 없다면 재수사 역시 별다른 성과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전히 관건은 찢어지고 불에 타버린 ‘장자연 리스트’다. 2009년 당시 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 결정적 원인 역시 리스트 확보 실패다. 당시에는 찢어지고 불에 타는 등 소실된 장자연 리스트의 일부분이 언론사를 통해 입수돼 보도됐고 이를 기반으로 제한된 수사가 진행됐다. 이런 결정적인 한계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물론 누군가 장자연 리스트의 복사본 등을 여전히 갖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당시 장자연의 죽음과 장자연 리스트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 이를 둘러싼 두 연예기획사 사이의 법정 분쟁 등이 이어졌음에도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측근이나 관계자가 사본을 갖고 있을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2011년에 공개돼 화제가 됐던 ‘장자연의 편지’ 일부.
장자연 리스트를 대신할 또 다른 문건이 등장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편지인데 실제 지난 2011년 장자연이 수감 중인 지인에게 보냈다는 대량의 편지가 언론에 공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렇지만 국과수 필적 감정까지 거쳐 해당 편지는 장자연이 쓴 것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방송인 낸시랭의 남편이 바로 당시 장자연에게 받은 편지를 공개했던 인물로 최근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이 남긴 미공개 편지를 공개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그렇지만 검찰은 실제 장자연이 남긴 편지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일부 연예관계자들 사이에선 검찰이 다른 루트를 통해 ‘장자연 리스트’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사건과 연루됐던 한 연예인과 관련된 별개의 사건을 검찰이 수사했는데 해당 수사 과정에서 ‘장자연 리스트’를 검찰이 입수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만 이런 부분 역시 음모론 내지는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반면 연예계 일각에선 충분한 반전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이 너무 급하게 사건을 덮으려고만 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 고 장자연과 그 측근들과 친분이 깊은 한 연예관계자는 “당시 경찰과 검찰에서 다양한 이들을 소환 조사했고 고인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들도 꽤 포함됐었다”라며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상당히 심도 깊고 신빙성 높은 진술을 했으며 경찰에서도 관련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내용이 수사 결과 발표에 대부분 포함되지 않았다. 그때 놓친 부분을 위주로 재수사가 이뤄질 경우 예상외의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
낸시랭의 남편으로 돌아온 왕진진 “장자연 미공개 편지 있다” 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결혼했다. 그런데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이를 공개했다. 우선 결혼식에 앞서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남편의 이름과 하는 일, 그리고 사진 등을 모두 공개했다. 사진=낸시랭 SNS 왕진진은 이미 2011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가 2009년 당시 장자연에게 받았다는 편지는 수백 페이지에 달한다.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사라진 ‘장자연 리스트’를 대신할 확실한 물증으로 급부상한 ‘장자연의 편지’는 재수사 요구 여론을 촉발시켰다. 그렇지만 국과수 필적감정 결과 그가 공개한 ‘장자연의 편지’는 장자연이 직접 쓴 게 아닌 왕진진이 쓴 위작으로 드러났다. 흐지부지 끝난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원하는 여론이 상당했던 터라 항간에서 국과수 필적감정 결과까지 믿지 못하며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편지를 보낸 왕진진에게 집중했다. 그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 동안 복역을 했으며 3개월 만에 동일 혐의의 다른 범죄를 저질러 다시 수감됐다. 이후 수감돼 편지가 공개된 2011년까지 계속 수감 중이었다. 유명인인 낸시랭의 남편이 문제의 왕진진과 동일인물로 밝혀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가 ‘장자연 편지 위조자’로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강력 범죄로 10년 넘게 수감생활을 한 인물이라는 점까지 밝혀진 것. 상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SNS를 통해 낸시랭이 혼인신고 사실과 함께 왕진진의 이름과 사진 등을 공개한 뒤 언론사로 각종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 이 과정에서 그가 현재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다수의 사기 사건으로 고발당해 서울 강남경찰서 등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도 알려졌다. 게다가 사실혼 관계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얘기까지 터져 나왔다. 12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왕진진은 “강남서 고소건은 아직 고소장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힌 뒤 “비즈니스 관계로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가 돼 있긴 하지만 유무죄는 사법기관이 밝혀야 할 부분으로 성실하게 재판에 응하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과 고소 등을 모두 인정하며 “잘못할 게 있으면 처벌받으면 될 일”이라 밝힌 것. 다만 내연녀에 대해선 “비즈니스 관계로 부부인 것처럼 보였을 수 있긴 하지만 절대 사실혼 관계이거나 내연녀는 아니었다”라며 “(낸시랭과의 혼인신고 이전에) 법적으로 결혼한 사실이 없고 동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전자발찌 착용설에 대해선 “지금 내가 전자발찌를 착용했는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남겼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낸시랭 역시 단호한 입장이었다. 이들의 혼인신고 이후 제보가 쏟아지면서 이런 부분을 낸시랭 역시 몰랐던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낸시랭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진실로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어 결혼하게 됐다”라며 “나는 진실을 나 알고 있다. 나를 걱정하셔서 하는 말씀들도 다 알고 있다. 다 알면서도 저는 왕진진, 전준주 제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장자연의 편지’에 대해선 여전히 “장자연에게 직접 받은 것”이라는 입장을 이어갔다. 게다가 미공개 편지까지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했다. 그렇다고 편지 내용까지 공개한 것은 아니고 자신이 대량의 장자연 편지 미공개분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수준에서 편지 다발을 꺼내서 보여주는 정도였다. 왕진진은 “필적감정을 위해 국과수에 들어간 편지가 몇 장인 줄 아는가? 몇 장 안 된다”며 “필적감정이 이뤄지지 않고 공개도 되지 않은 편지가 몇 장이나 더 있는지 아는가?”라며 지난 2011년 국과수 필적감정 결과에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왕진진은 당시 장자연의 편지 논란으로 인해 증거위조죄로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왕진진은 2012년 ‘일요신문’에 편지를 보내 ‘장자연의 편지’는 사실이라며 추가로 공개할 편지가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최준필 기자 왕진진의 이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편지 공개 이후에도 줄곧 자신이 공개한 장자연의 편지가 위조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는데 2012년엔 <일요신문>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공개한 편지는 실제 고 장자연에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마카오 일본 홍콩 및 국내에 있는 관계자들이 실체적인 진실이 담긴 편지 원본 1400페이지 이상을 갖고 있다”고도 주장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왕진진은 미공개 장자연의 편지까지 들고 나왔지만 속 시원하게 진실을 얘기해주진 못했다. 그는 스무 살 무렵인 1999년부터 10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다. 결국 고 장자연이 연예계 활동을 할 당시 왕진진은 수감 중이었다, 이에 대해 왕진진은 “10대 시절에 장자연을 만나 친분을 쌓았다”고 얘기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10대를 보낸 장소가 왕진진은 전남 강진이며 고 장자연은 전북 정읍이다. 이렇게 떨어진 지역에서 10대를 지낸 고 장자연과 어떻게 친분을 맺게 됐는지에 대해 왕진진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왕진진은 자신을 ‘장자연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오빠’라고 소개했지만 이들은 모두 1980년생 동갑이다. 오히려 고인이 80년 1월생으로 왕진진보다 한 학년 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왕진진은 “서류상으론 80년생이지만 실제론 71년 생”이라며 자신이 오빠가 맞다고 주장했다. 왜 서류상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9살이나 차이가 나는 지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은 없었다. 12월 30일 오후 강남 삼정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낸시랭과 왕진진. 왕진진이 고 장자연에게 받은 편지 미공개분이라며 종이뭉치를을 꺼내 들었다. 이종현 기자 왕진진의 주장대로라면 전남 강진에 살던 10대 시절 밝히지 않은 계기와 이유로 고 장자연과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그는 80년생이 아닌 71생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면 상당한 모순이 발생한다. 71년생인 왕진진의 10대 시절은 80년대로 고 장자연은 당시 채 10살도 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회견을 통해 왕진진은 “장자연에게 받은 편지가 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을 뿐 이를 입증할 별다른 증거나 명쾌한 답변은 내놓지 못했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