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최진희 이선희 여전한 인기…사회 맡은 서현, 후배 그룹도 참여 ‘평양은 서현시대’
이번 공연에는 가수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를 비롯해 윤도현, 강산에, 백지영, 정인, 알리, 김광민, 그리고 서현과 걸그룹 레드벨벳까지 총 11팀(명)의 가수들이 참여했다. 총 26곡을 불렀고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그의 아내인 리설주 등 북한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이 공연을 관람했다. 13년 만에 북한에서 열린 남한 가수들의 공연, 과거 공연들과 비교하면 과연 무엇이 달랐고, 또 무엇이 같았을까?
#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를 향한 여전한 사랑
북한 공연 소식이 전해진 후 가장 먼저 참여 가수로 이름이 거론된 건 단연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였다. 이들 모두 이미 북한에 다녀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남한 노래를 부른 가수들로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고, 이질감도 적었다.
역대 가장 많이 방북 공연을 치른 가수는 최진희다. 지난 16년간 4번이나 북한에 다녀왔다. 최진희가 이토록 북한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이 최진희의 대표곡인 ‘사랑의 미로’였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열린 공연에서도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이 노래를 불렀다. 예상대로 최진희는 이번 방북 공연에서 ‘사랑의 미로’를 비롯해 ‘뒤늦은 후회’를 선사했다.
남측예술단 평양방북 3일차. 남측 예술단 일행이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조용필은 2005년 평양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정도로 현지에서 인기가 높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조용필은 오는 5월 5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 중이었으나 방북 공연 제안을 받고 흔쾌히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조용필이 이끄는 밴드 위대한탄생이 함께했기 때문에 공연을 앞두고 다른 참여 가수들이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조용필의 연습실을 찾아서 리허설을 갖기도 했다. 방북 당시 조용필은 후두염에 걸렸었는데 고열을 동반한 통증을 호소하는 상황 속에서도 북측의 요청에 따라 ‘그 겨울의 찻집’과 ‘꿈’, ‘단발머리’, ‘여행을 떠나요’ 등 그의 히트곡을 연이어 소화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2003년에 방북 공연을 펼친 경험이 있는 이선희 역시 ‘J에게’, ‘알고싶어요’를 부르며 전매특허인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세 가수는 북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수로도 유명하기 때문에 방북 공연단 섭외 1순위로 손꼽혔다”며 “그들 역시 이미 관람 문화가 남한과는 다른 북한에서 공연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능숙한 무대매너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 방북하는 새 얼굴, 발탁 기준은?
공연 개최가 결정된 후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누가 방북 공연에 합류하는지 여부였다.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의 합류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다른 가수들의 경우 폐쇄적인 북한의 체제 특성상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감독을 맡은 윤상은 적임자라는 평가가 많다. 20년 넘게 활동 중인 그는 단순한 발라드 가수일 뿐만 아니라 EDM을 익히는 등 현대적인 감각이 뛰어나다. 게다가 여러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뮤지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항간에서는 관계자들의 친분이 조명받기도 했다. 김광민의 경우 윤상과 같은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고, 강산에는 윤도현,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등과 함께 같은 기획사에서 일한 인연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면에서 이번 가수 섭외는 충분히 수긍할 만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광민은 피아니스트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공연의 품격을 높여줄 만한 인물이었다. 강산에 역시 먼저 출연이 결정했던 가수들과는 결이 다른 록과 록발라드를 부르는 가수였다. 그가 담백한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른 ‘라구요’와 ‘명태’는 현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윤도현의 경우 ‘깜짝 발탁’이라 보기 어렵다. 2002년 이미 한 차례 평양 공연을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춰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며 국민적인 밴드로 급부상했던 윤도현은 16년 만에 다시 북한 땅을 밟았다. 그는 록버전으로 편곡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외에도 ‘나는 나비’와 통일을 소망하는 마음을 담은 ‘1178’로 의미를 부여했다.
첫 방북 기회를 얻은 백지영, 정인, 알리 등 ‘발라드 여가수 3인방’의 강점은 단연 가창력이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들이 북한의 정서와 잘 맞았다는 평이다. 특히 백지영의 히트곡 ‘총 맞은 것처럼’과 ‘잊지 말아요’는 북한에서도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고, 정인과 알리는 각각 ‘오르막길’과 ‘펑펑’을 부른 후 듀엣곡 ‘얼굴’로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사했다.
남측예술단 평양방북 3일차. 2일 오후 예술단 가수 이선희와 소녀시대 서현이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옥류관 직원이 냉면을 나르고 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K-팝 주역들, 왜 보이그룹은 없었나?
최근 한류를 이끌고 있는 K-팝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 중에서는 소녀시대 출신 서현,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레드벨벳이 참여했다.
특히 서현의 역할이 컸다. 사회를 맡은 서현은 지난 2월 삼지연 관현악단의 서울 공연 때도 무대에 올라 북한가수들과 ‘다시 만납시다’를 부른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는 북한 노래인 ‘푸른 버드나무’를 부른 후 모든 출연진과 합창으로 ‘친구여’, ‘다시 만납시다’, ‘우리의 소원’을 선사했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서현은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인 소녀시대 출신으로 북한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데다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 사회자로도 낙점된 것 같다”며 “지난 2월 한 차례 북한 가수들과 호흡을 맞췄던 것도 이번 공연에서 그가 주요 역할을 하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현의 후배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레드벨벳은 안무를 곁들인 ‘빨간맛’, ‘배드 보이’를 연이어 부르며 선배 가수들의 무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류의 주춧돌 역할을 하며 큰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보이그룹이나 남성 가수들이 합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특히 역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랐던 가수 싸이와 지난해 그에 버금가는 성과를 올린 방탄소년단이 가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차분하고 감성적인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에게 싸이나 보이그룹의 공연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방북 공연에는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인 신화가 참여한 적이 있지만 결국 이번에는 보이그룹 없이 공연을 치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