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결 사이로 S라인을 만나다
▲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는 보성차밭(맨 위). 보성 제2다원으로 알려진 회령다원에서 차를 따는 아낙들(아래 왼쪽). 아래 오른쪽사진은 대원사 앞 정원 돌다리에 앉아 봄을 즐기는 여행객. | ||
대한다원, 봇재다원, 회령다원, 몽중산다원, 청룡다원…. 국내 최대 차 생산지답게 보성 전역에는 차밭이 널려 있다. 수많은 차밭 중에서 여행객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곳은 대한다원과 봇재다원, 회령다원 등 세 곳이다. 대한다원은 광고나 TV, 영화 등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차밭으로 가는 초입부터 삼나무가 2열종대로 도열을 하며 인사한다. 일교차가 큰 요즘, 습도가 높은 골짜기에 자리한 대한다원 일대에는 매일같이 안개가 이불처럼 깔린다. 삼나무길도 예외는 아니다. 안개에 젖은 이 길은 마치 몽환의 숲 같다. 나무들 사이로 일정하게 열린 공간이 모두 안개로 채워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곧고 길게 뻗은 삼나무의 둥치들이 곁길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길손을 보호하며 차밭으로 안내할 뿐이다.
지독한 안개를 헤치며 닿은 차밭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다. 차나무들이 물결을 이루고 이리저리 넘실댄다. 때로 언덕 위로 우르르 ‘U’자를 그리며 몰려가기도 하고 ‘S’라인의 섹시미를 뽐내며 능선을 넘기도 한다. 곱게 빗질을 한 듯 차분한 직선의 미덕을 가르치는 차나무 군락도 있다.
안개를 피해 차밭의 높은 언덕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본다. 날 선 칼처럼 푸르께한 새벽이 물러가고 멀리서 해가 떠오른다. 대한다원에서 맞는 일출은 대단히 경이롭고 낭만적이어서 전국 사진애호가들의 발걸음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길손은 온전히 새벽의 다원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줄 알지만 언제 찾아가든 누군가는 다원 꼭대기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다.
찻잎은 따는 시기에 따라서 종류가 나뉜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까지 채엽한 첫물차는 맛이 향기롭고 그윽하다. 특히 청명(4월 4~6일경)과 곡우(4월 20일) 사이에 따서 만든 차를 ‘우전’이라고 해서 최상으로 친다. 입하(5월 5~8일)까지 따서 만드는 ‘세작’도 그 못지않다. 두물차는 5월 중순에서 6월 하순까지 수확한 차로 중작이라 하고 그 후의 것들은 세물, 네물차로 대작에 포함된다. 찻잎은 10월 초순까지도 수확한다. 그러나 늦게 딸수록 섬유질이 많고 아미노산이 적어 품질이 떨어진다.
우전차의 생산시기인 곡우 전 대한다원은 목련으로 빛났다. 차밭 군데군데 자리한 목련은 어두운 밤에도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입하가 지난 지금은 사과꽃이 한창이다. 벚꽃인가 해서 올려다보니 달콤한 사과꽃향기가 차밭에 은은히 퍼진다.
▲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백제시대의 절 대원사. 아래 사진은 국내 최대 철쭉군락지로 꼽을 만한 일림산 능선에 철쭉이 활짝 폈다. | ||
회령차밭에서는 일림산으로의 산행이 가능하다. 일림산은 해발 667m 높이에 불과하지만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데다가 산을 붉게 수놓는 철쭉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5월 초까지 60% 정도의 개화를 보여주던 일림산 철쭉은 5월 4일의 단비 이후 피지도 않고 떨어지던 몽우리들이 생기를 찾으며 산을 더욱 붉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등산시간은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는 한치재에서 올라 용추폭포 방면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차량을 가지고 갔다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때는 용추폭포 쪽을 기점으로 삼는 편이 좋다.
용추폭포 쪽에서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데 산에 오를 때엔 산행안내소 100여m 전 왼쪽 등산로를 이용하고, 하산 시에는 용추폭포 오른쪽 골치 방면으로 내려오는 게 낫다. 골치 방면 길이 험해서 오르는 데 훨씬 힘이 든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철쭉은 일림산 8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크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일림산에서 사자산, 제암산으로 이어지는 ‘철쭉벨트’는 무려 10㎞가 넘어서 우리나라 최고로 칠 정도다. 사전계획을 변경하고 사자산을 넘어 제암산까지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꽤 있을 만큼 매력적인 코스다.
차밭과 일림산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보성의 명소다. 하지만 이번 여행길에는 ‘또 다른 보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메타세쿼이아 길과 대원사 가는 왕벚꽃 길이 그곳이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끝난 뒤 조금 더 올라가다보면 대원사로 이어지는 왼쪽 길이 나온다. 왕벚나무가 길 좌우로 빽빽이 서 있는 5㎞ 남짓한 길이다. 비록 꽃은 다 떨어지고 없지만 햇살 한줌 들지 않는 초록색 터널을 달리는 기분이 그만이다. 이 길 끝자락에 자리한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503년) 때 지어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원사 옆 티베트박물관도 시간을 내 들러볼 만하다.
여행 안내
★길잡이: 호남고속국도 동광주IC→22번 국도→화순→29번 국도→보성
★먹거리: 대한다원 매표소 옆 ‘삼나무숲길 따라’(061-853-4422)에서 녹차삼겹살, 녹차수제비, 녹차해물덮밥 등을 맛볼 수 있다. 율포해수욕장 근처에 횟집이 많다. 요즘은 키조개철이다. ‘갯마을횟집’(061-852-8103)과 ‘행낭횟집’(061-852-8072)이 키조개회와 회무침, 바지락회와 죽 등을 잘 한다.
★잠자리: 율포해수욕장 근처에 숙박업소가 많다. 대한다원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향각 옆 카페로 알려진 ‘초록잎이 펼치는 세상’(061-852-7988)은 펜션이기도 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안개 낀 차밭의 풍경이 운치 있다.
★문의: 보성군청(http://www.boseong. go.kr) 문화관광과 061-850-5223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