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피해치유센터 조직한 유가족 공복순 씨 “유족들 트라우마 벗어나기 어려워...남은 자식 자살로 잃기도”
- 공 씨 “센터는 눈치 보지 않고 아들 얘기를 하고 싶은 장소...우린 아무리 얘기해도 안 지쳐”
- A씨 “똑똑한 유족이 똑똑한 결과를 낳는식...오로지 유가족 몫...군대 내 전담 TF 만들어야”
[일요신문] “길가에 벚꽃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우리 아이 장례식 날에도 벚꽃이 눈처럼 내렸는데…참 좋은 때 갔어. 여기 오는 데 청바지에 후드 티 입은 아이를 봤어요. 우빈인 줄 알았어요.”
공복순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공 씨는 2011년 4월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노우빈 일병(당시 21세)의 ‘엄마’다. 노 일병은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아들을 보낸 엄마는 공 씨만이 아니다. ‘일요신문’은 공 씨처럼 군대에서 허망하게 아들을 잃은 부모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4월 12일 오전 성북구의 군 피해치유센터 ‘함께’의 공복순 대표를 만나 치유센터를 만들게 된 계기와 하는 일, 향후 계획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종현 기자
공복순 씨는 “장례식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만 끝나면 이 연극이 끝날 것이란 소망이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왔는데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갔는데 우리 아이만 없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아들을 잃은 뒤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을 찾아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임 소장은 “어머니, 할 일이 많은데 우시면 어떡해요”라며 공 씨를 위로했다. 공 씨 뿐만이 아니었다. ‘아들 일’은 정리가 됐는데 엄마들은 오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공 씨는 군 피해치유센터 ‘함께(센터)’를 만들었다. 센터는 2016년 1월 16일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개소식을 갖고 2017년 3월엔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센터는 군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피해 가족의 교류를 주선한다. 또 장례식 추모집회 등을 공동으로 주관하고 정부에 군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에 대한 치유 지원 제도를 촉구하는 활동 등을 한다.
공 대표는 “센터를 열고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도와주세요’다. 엄마들을 심리적·정서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만든 센터인데 막상 오는 엄마들은 법적인 문제 등 현실적인 도움을 받길 원했다. 그런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센터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1~2년은 헤맸다”고 설명했다.
센터엔 매주 월요일 오후 6시부터 심리 상담가가 상주해 있다. 공 대표는 “아들들의 기일과 생일을 챙긴다. 매주 둘째 주 수요일은 함께 걷고 밥 먹고 얘기한다. 서로 경험한 것들을 알려주고 비슷한 경험을 한 엄마들끼리 연결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에너지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공 대표는 이를 ‘악상’이라고 표현했다. 공 대표는 “사람들은 우리를 ‘자식을 먼저 보낸 죄인’ ‘죄 받았다’고 생각한다. 친지에게 아들 얘기를 하면 처음엔 들어준다.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지쳐한다”고 말했다.
센터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센터는 눈치 보지 않고 아들 얘기를 하고 싶은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아무리 얘기해도 지치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얘기를 안 하면 우리 아이가 죽는다. 사라진다”라며 울먹였다.
센터를 찾는 부모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2013년 2월 군에서 아들을 잃은 아빠 A 씨도 자주 센터를 찾는다. A 씨는 “유족들의 삶은 아들이 살아있을 때와 죽은 이후가 완전히 다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울고불고 편하게 얘기할 수도 있고 어려운 점도 나눈다.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족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공 대표는 “나 또한 남편과 딸이 망가지는 줄도 몰랐다. 한 가족은 아이를 잃은 슬픔에 엄마는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아빠는 술만 마셨다. 술만 먹던 아빠는 아들한테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 남은 아들도 자살을 했다”고 말했다.
사건 자체를 풀지 못한 유족도 있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다. 너무 명백해 사건이 금방 마무리 됐다. 작년 9월 ‘철원 총기 사고’ 사건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 그 엄마가 울기만 하더라”라고 했다.
군 피해치유센터 ‘함께’. 이종현 기자
A 씨는 “군에서 ‘똑똑한 유족이 똑똑한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군 피해자 유족들은 여기에 모두 동감한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가 실형을 선고 받지 못 할 수도 있다. 일반 사망으로 끝나 버릴 수도 있고, 억울해서 장례도 치루지 않고 아들 시신을 냉동고에 넣어 놓는 유족도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공 대표 또한 “왜 똑똑한 유족이 똑똑한 결과를 낳게 하나. 이게 국가냐“면서 ”군 인권 센터가 있는 걸 아시는 분은 ‘엄청난’ 엄마다. 정보가 없는 엄마들만 죽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A 씨는 오랜 시간 인터뷰를 망설였다. 그는 “군대에서 죽음은 ‘개죽음’이다. 거대한 국가 조직을 상대로 개인이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며 “용두사미로 결론도 없이 흐지부지 없는 얘기가 되는 게 싫었다”고 했다.
A 씨는 군 경험을 바탕으로 “군대 내 사건 전담 TF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사건이 벌어지면 전담 TF를 만들어 언제라도 유족이 수사 진행 상황과 내용 등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보상금이나 퇴직금 처리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모든 뒷수습까지 유족이 맡아야 한다. ‘억울하면 고소하라’는 얘기도 가르쳐 줘야 한다. 유족들은 판단할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재판에 갔더니 재판장이 부대 내 인사팀 관계자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재판장은 반드시 민간인이나 해당 군부대 출신이 아닌 사람 가운데 신망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대에서 사망하게 되면 국가유공자나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제도에 대해 유족들은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A 씨는 “죽음을 당했는데 분류해서 보상 내역까지 차이 나게 하는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했다. 공 대표 또한 “국가유공자인 엄마도 있고 보훈보상대상자인 엄마도 있다. ‘윤 일병 사건’은 보훈보상대상자에서 소송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군에서 잘못해서 죽었는데 죽음에 차별을 둔다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A 씨는 아직 아들의 방을 치우지 못했다. “내가 잘해준 것보다 혼내고 못해준 것만 생각나요. 아직도 5년이나 지났지만 아들 방에 영정 사진과 군에서 표창 받았던 것들, 군번줄, 군모, 자격증 하나하나 다 모아 놨어요.”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군 인권센터 2017년 연례 보고서, 2016년 대비 군 인권침해 2배 증가 군 인권센터 2017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군 인권센터로 접수된 인권침해 상담은 총 1036건으로 2016년보다 2배 넘게 증가했다. 군 인권침해 상담을 위한 아미콜 상담전화 콜 수는 3021건을 기록했다. 피해자의 80%는 현역 군인이었다. 피해자 가운데 병사 그룹에선 일병(17.9%)이 가장 수가 많았고, 상병(10.5%)과 병장(12.6%)의 비율도 높았다. 간부 그룹에선 초급 간부(하사, 중사, 위관급 장교) 등의 피해 호소가 다수를 이뤘다. 이들은 사생활 침해, 부당 지시에 따른 고충 호소, 상관의 폭언 등의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 가운데 간부 그룹에선 장교 계급의 수가 가장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중령이 23.9%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군 인권센터 측은 “일선 지휘관인 대대장이 부당 지시를 내리거나 휘하의 인권침해 신고를 받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장성이 가해자인 인권침해 상담이 39건으로 증가했다. 군 인권센터 측은 ‘박찬주 대장 갑질 사건’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또한 2016년 대비 증가율이 높은 피해 유형은 가혹행위(3.2배), 병영부조리(3.7배), 복무부적응(3.3배), 성소수자 및 군형법 제92조 6항(3.7배)으로 나타났다. 현행 군형법 제92조6항에는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군 인권센터 측은 “이 외에도 노동권, 문화권 등 사회권적 기본권에 대한 침해 호소가 증가했다. 특히 간부에 대한 사생활 통제 사건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공복순 군 피해치유센터 ‘함께’ 대표는 “부모들에게 ‘군대 가서 사람 되서 나오라’는 말 하지 말라고 한다. 낭만적인 생각만 하지 말고 군대의 열악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