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신선이 숨겨논 냉장고로다~
▲ 고선계곡에는 야영을 하기에 적합한 넓은 자갈밭들이 많다. | ||
봉화에서 태백으로 이어지는 35번국도를 타고 10여 분 정도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잔대미(백담)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고선계곡의 시작점이다. 고선계곡은 여기서부터 약 20km에 걸쳐 산속 깊은 곳으로 마치 심장을 찾아드는 혈관처럼 파고든다. 고선계곡은 청옥산과 각화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합수해 흘러내리는 계곡이다.
길은 계곡을 따라 흐른다. 그러나 교행이 불가능한 좁은 시멘트길이다. 앞에서 차라도 마주칠라치면 뒤로 후진하기를 반복해야 한다. 계곡을 따라 길을 가는 동안 최소 네댓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편의를 위해 길을 넓히고, 이런 조그마한 번거로움조차 없애버렸다면 이 계곡이 아직까지 자연미를 잃지 않고 남아있진 못 했을 것이다.
고선계곡은 이 계곡에 아홉 마리의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의 명당이 있다 해서 구마계곡 또는 구마동 계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치 말들이 발굽을 구르듯 계곡물은 쉼 없이 힘차게 흐른다.
지금껏 왔던 길보다 운치가 있는 길이다. 금강소나무라 일컫는 춘양목들도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 길을 계속 나아간다. 더 넓고 수량이 풍부한 소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숲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인기척도 줄어든다. 요령껏 주차를 하고 더위를 씻기 위해 계곡으로 첨벙. 물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다. 아무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들 이곳에는 감히 침입을 하지 못 한다. 고선계곡에는 급류가 없다. 깊은 소도 없다. 콸콸 쏟아져 내리는 작은 폭포 하나도 없는 게 다소 아쉽지만 물놀이를 즐기기에는 이곳 만한 계곡이 없다.
갈림길에서부터 다시 길을 따라 약 5km쯤 갔을까 찻길이 마침내 끝난다. 길은 계속 이어지지만 통행금지를 알리는 차단막이 내려져 있다. 일반인들은 갈 수 없는 길, 바로 국유림관리지역이다. 고선계곡의 최상류는 나랏일에 쓸 질 좋은 춘양목을 경영하는 곳이다. 금강소나무 또는 황장목이라 부르는 춘양목은 남대문, 광화문 등의 개보수 작업에 쓰인다. 일반 소나무와 달리 껍질이 붉고 육질은 단단하다.
차의 엔진음을 끄자 숲의 소리가 오롯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새들과 나뭇가지와 풀들을 훑고 지나는 바람소리, 청아한 계곡물소리, 그리고 터벅터벅 내딛는 발자국소리. 행복이란 먼 데 있지 않다.
한편 고선계곡 인근엔 백천계곡도 있다. 봉화에서 태백으로 향하는 35번국도상에서 고선계곡 쪽으로 빠지지 않고 계속 위로 올라가다보면 왼쪽으로 나온다. 16km 이상 이어지는 긴 계곡으로 고선계곡 못잖은 운치를 자랑한다. 고선계곡과 함께 열목어의 남방한계지역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