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오너라…내 눈에 품어보자
▲ 한개마을의 대표적인 옛집인 북비고택. 영조 50년(1774년)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이석문이 터를 잡은 집이다. | ||
성산가야의 본거지 경북 성주에는 오랜 삶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전통마을이 하나 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보여주기’식 전통마을이 아니다. 마을이 조성되던 그 옛날부터 현재까지 생활공간을 가능한 원형대로 보전하며 대대손손 살고 있는 곳이다.
성주군 월향면 대산리에 자리한 한개마을은 1450년경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정착해 터를 잡은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으로 낙동강 지류인 백천이 흐르는데 이곳에 큰 나루가 있었다고 해서 한개마을이라 불리게 됐다. 순우리말 이름으로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개’는 ‘나루’를 의미한다. 마을이 세워질 당시만 하더라도 나루에 드나들던 배들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배 한 척 드나들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나루의 현재와는 달리 마을은 꿋꿋이 수백년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개마을에는 60여 채의 한옥과 초가 등이 어우러져 있다. 대부분 현재까지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다. 이곳에는 북비고택과 교리댁, 하회댁 등 보존상태가 특히 뛰어난 집들이 꽤 많다. 이 점을 인정받아 한개마을은 지난해 12월 4일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을의 건물들은 대부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건립됐다. 한옥의 경우 집집마다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 등이 잘 배치되어 있다. 한개마을 안내소를 지나 올라가다보면 진사댁 바로 지나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일단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한개마을을 대표하는 교리댁, 북비고택, 월곡댁 등 고택들을 만나볼 수 있다.
▲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건립한 하회댁(왼쪽). 영조 43년(1767년) 이민검이 건립한 한주종택. 마당에 배롱나무가 인상적이다. | ||
교리댁 바로 건너편이 북비고택이다. 한개마을의 상징적인 집이다. 영조 50년(1774년)에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었던 훈련원 주부 이석문이 지은 집이다. 역시나 교리댁처럼 대문이 열려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에서 사람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이 오랜 마을과 주민들은 낯선 이를 좀체 막아서는 법이 없다. “집구경을 왔다”고 하면 기꺼이 허락을 하며 방해가 되지 않게 피해주거나 혹은 호기심을 보이는 방문객이라면 그 역사에 대해 ‘조근조근’ 가르쳐 준다. 특히 눈에 띄는 북비고택의 사랑채에는 ‘독서종자실’(讀書種子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독서를 통해 자식을 가르치는 집이라는 뜻이다. 책읽기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잘 보여주는 현판이다.
북비고택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월곡댁이 있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지은 한옥이다. 1911년 이전희가 지은 집으로 1930년에 사당이 지어졌고, 1940년에는 별당채가 추가되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사랑채 때 벗기기 공사가 한창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세월의 때, 손때 등이 묻어 검게 변한 기둥과 서까래의 색깔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있다. 작업의 간편함을 위해 전기글라인더로 미는데 이 때문에 나무의 결들이 다 깎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간혹 이런 작업을 하며 천정에 써 놓은 상량문도 지워버리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월곡댁의 상량문은 지워지지 않았다.
월곡댁은 마을 왼쪽 길의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또 다른 갈래의 길과도 연결돼 있다. 그 길 중간에 한주종택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한수헌이라는 정자 옆에서 연못을 정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개마을은 돌담길 또한 아름답다. 진흙과 돌을 혼합하여 쌓은 옛 담장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 좋다. 마치 마음의 고향이라도 찾아가는 길 같다. 다만 요즘 곳곳에 담장이 무너져 정비 중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7월 28일 시작한 공사는 9월 25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한개마을만으로는 다소 단조로운 수도 있는 여행길. 그러나 인근에도 둘러볼 만한 곳들이 꽤 있다. 마을에서 약 5분 거리에는 도산서당이 있고, 한개마을을 품은 영취산 중턱에는 신라 말기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한 감응사가 있다. 12㎞가량 떨어진 초전면에는 세종대왕태실과 효소왕 1년(69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선석사가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성주IC→왜관 방면 33번 국도→대황삼거리에서 우회전 30번 국도→신부교차로 진출하자마자 좌회전 후 직진→한개마을
★잠자리: 한개마을 주변에는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 성주읍내에 대원장(054-933-9090), 로얄장(054-933-6685), 동신장(054-933-2545) 등 숙박시설이 있다.
★먹거리: 한개마을에서 나와 왜관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안포리에 청국장을 잘 하는 ‘왜관식당’(054-932-9554)이 있다. 20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집답게 청국장 맛이 무척 진하고 깊다. 반찬으로 나오는 고등어찜도 일품이다.
★문의: 주군 문화관광포털(http://sjmelon.go.kr/tour), 문화체육정보과 054-930-6063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