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정’ 최대한 예의 갖춰 문전박대
무엇보다 지도부 내부의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지난 12월 2일 전북지역 기자간담회에서 “정 의원과 신건·유성엽 의원의 일괄복당을 허용해야 한다”며 ‘과감한 대통합’을 주문하고 나섰다. ‘정동영 공천 파동’이 있었던 지난 4월 재·보궐선거 때만 해도 “전주에서 벌어진 무소속 연대의 해당행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민심은 민주당 편이었다”며 정 의원 측을 강하게 비판했던 그다. 물론 이날 발언은 서울시장 출마와 당권 도전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송 최고위원의 ‘개인적 상황’이 발단이 됐다는 평가가 많지만, 정 의원의 복당 없이는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는 전북지역 정가 상황을 반영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일부에선 복당이 계속 지연될 경우, 지방선거를 겨냥해 정 의원 진영의 독자세력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전북도당 관계자는 “당 안팎의 ‘정동영계’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이 거취를 놓고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만약 정 의원 복당의 때를 놓치면, 민주당과 ‘지방선거판’ 무소속 연대가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지도부는 그러나 여전히 느긋한 표정이다. “정 의원 복당은 이미 예정된 것인 데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또 복당문제 등은 당내 야권통합추진기구인 ‘통합과 혁신위원회’에 일임한 상태로 제 세력이 함께할 때 정 의원도 같이 들어오면 된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지난 12월 2일 전주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무소속 의원들이 복당을 하고 싶으면 당에 복당신청을 한 뒤 당헌·당규에 따라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런 절차를 밟을 경우, 당사자들의 명예에 손상이 가고 당에도 좋을 게 없는 만큼 앞으로 (통합과 혁신위를 통해) 통합과정에서 합류하면 이런 절차도 면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또 복당을 의도적으로 늦추는 게 아니냐는 비판과 관련, “그분(정동영 의원)이 탈당하고도 나는 심하게 비판한 적이 없고 점잖게 있었다. 내가 (정 의원 지역구인) 전주 덕진 지역위원장을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내 진심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생각하지 않고 음해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한 비주류 진영의 입장은 크게 다른 모습이다. “지도부에게서 도무지 위기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10·28 재보선 승리로 정 대표가 지나친 자신감에 도취돼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비주류 측 한 의원은 “친 노무현 신당인 국민참여당 창당으로 야권 분열이 이미 시작됐는데 당에 들어오겠다는 사람들까지 복잡한 절차를 이유로 막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식으로 지방선거를 치렀다가는 텃밭인 호남에서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의원은 “정 대표가 과감하게 기득권을 버리는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하는데 ‘말로만 통합’을 외치고 있다”며 “통합과 혁신위가 출범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결과물 하나 내놓은 게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정 의원 복당 문제에선 분명한 ‘고의성’이 엿보인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 대표 측이 통합과정에서 정 의원을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취급해 잠재적 대선주자로서의 정 의원의 위상을 제한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 의원과 가까운 한 재선의원은 “정 의원 복당 문제를 통합과 혁신위에 일임했다는 것은 재야·시민사회·친노들과의 통합과정에 정 의원을 구겨 넣어 복당의 정치적 효과를 최소화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 의원 측이 전북지역 등의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를 위해 ‘늦어도 연말까지’라는 복당 시한을 정해놓은 상황에서 ‘절차’를 이유로 내년으로 넘기려는 것은 누가 봐도 속내가 뻔히 보인다는 것이다.
정 의원 역시 ‘무소속 연대’ 소속 의원 및 지지자들과 대규모 단합대회를 갖는 등 복당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정 대표를 향해 ‘무력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 또 이강래 원내대표, 박주선 최고위원 등 민주당 의원들과 접촉면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절박하고 초조하다는 방증인 셈이다.
지난 11월 28일 정·신·유 의원 등 무소속 3인방이 주최한 단합대회에는 28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정 의원 측은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게 없는, 단합 도모 차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이날 모임에는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이 대거 몰려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지난 9월에도 비슷한 성격의 단합대회가 있었지만 이번 같은 대규모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지도부 압박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무소속 연대’ 관계자는 “우리야 그러고 싶지 않지만 민주당 지방선거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따로 일을 벌이자’고 부추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최근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정치활동 재개를 엿보는 동교동계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겠다는 사람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며 측면지원에 나선 것도 ‘혹시 모를’ 연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 대표 측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만약 정 의원 측이 ‘홀로서기’를 시도할 경우,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고 그만큼 민주당 복당 길도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대표 측 핵심관계자는 “솔직히 정 의원의 영향력은 전북 내 ‘전주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며 “군산, 익산만 가도 정 의원에 대한 호감도가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독자세력화는 정 의원을 ‘제2의 이인제’로 만드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올수록 정 대표와 정 의원 간 충돌은 이래저래 격화될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