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과 함께하는 산책로
▲ 조선 순조 인릉 | ||
▲길잡이: 서울지하철 3호선 양재역 7번 출구로 나온 후 140, 407, 408, 440, 462, 471번 버스 환승
▲문의: 문화재청 헌인릉 관리소(http://heonin.cha.go.kr) 02-445-0347
지난 6월 26일,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후 이들 왕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훌륭한 나들이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지하에 묻힌 어느 왕들도 자신의 무덤이 여행지 목록에 오를 거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조선의 왕릉은 다른 나라 왕릉에 비해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자연과 어울림이 절묘하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자리한 헌·인릉 역시 그렇다.
헌·인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과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을 이른다. 태종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아들로서 왕자의 난에서 승리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한편 순조는 조선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정조의 둘째아들로 11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순조의 인릉은 본래 파주 교하에 있다가 1856년 현재의 자리로 이장됐다.
헌·인릉 관리소 정문으로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것이 인릉이다. 신성한 공간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떡 하니 서 있고, 뒤로 정자각과 비각이 보인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인릉이다. 순조와 그 비인 순원왕후가 묻힌 곳이지만 봉분은 하나다. 순원왕후가 죽자 합장한 것이다. 마치 호위무사처럼 좌우 그리고 뒤편으로 기다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버티고 있다. 무덤 앞에는 팔각 석등이 정면에 배치되어 있고, 석마를 대동한 문무석인들이 왕과 왕비를 보필하고 있다.
헌릉의 구조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합장을 하지 않아 봉분이 둘이며 문무인석과 석마도 인릉보다 두 배가 많다. 석등도 각 봉분마다 정면에 하나씩 있다. 헌릉에서는 비각 안에 있는 비석을 눈여겨볼 만하다. 거북이 높이 3m가량 되는 비석을 짊어지고 있다. 거북의 얼굴이 마치 용을 닮은 듯하다.
인릉과 헌릉 아래로는 오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무려 5만 6000㎡(1만 7000평)에 달하는 오리나무 군락지다. 이 숲은 2005년에 서울시에서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오리나무 집단 자생지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오리나무라는 이름은, 이정표 삼아서 5리마다 한 그루씩 심었던 데서 유래한다. 오리나무는 타원형 잎을 가진 낙엽교목. 이 숲의 오리나무들은 거의 모든 잎을 떨궈 바닥에 포근히 이불을 깐 듯하다. 간간히 섞여 있는 단풍나무와 어울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헌·인릉에는 2.5㎞가량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인릉에서 헌릉으로 약 500m의 오리나무숲길이 이어지고, 헌릉 뒤를 돌아 인릉광장으로 나오는 약 2㎞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한 숲길로 이뤄져 있다. 다소 경사가 있는 길이지만 그렇게 힘에 부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럽다면, 짧은 코스를 택하면 된다. 헌릉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직진하지 않고 왼쪽으로 난 길을 택하면 된다.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다.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고, 오색딱따구리와 온갖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맑게 퍼지는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깊은 숲길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