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풍경 가득한 골목 친구야 놀~자
▲ 수암골 집 외벽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 ||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청주IC→상당구청 방면 36번 국도→상당사거리에서 17번 국도 따라 좌회전→청대사거리 지나 내덕칠거리에서 우측 36번 국도→주성사거리에서 우회전→수암골
▶중부고속국도를 이용할 경우, 서청주IC→상당구청→청대사거리에서 좌회전→내덕칠거리에서 36번 국도→주성사거리에서 우회전→수암골
▲먹거리: 상당사거리에서 청대사거리 방면으로 가다보면 청주시청이 있는데 이 부근에 묵밥과 메밀막국수를 잘하는 묵사발(043-252-5400), 삼계탕이 일품인 고려삼계탕(043-222-3987) 등 맛집들이 많다.
▲잠자리: 숙박업소를 잡기는 어렵지 않다. 상당사거리 근처 서문동에 오아시스모텔(043-254-0021), 릿지모텔(043-223-8467) 등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남문로1·2가를 만나는데, 이곳에도 캐슬모텔(043-221-5510), 발리모텔(043-255-7707) 등이 있다.
▲문의: 청주시청(http://www.cjcity.net) 문화관광과 043-200-2232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 15통. 이곳이 수암골이라고 불리는 벽화마을로 공식 지번은 ‘혜원정사’ 주변 수동 81~84번지 일대다. 상당구의 우암산 기슭에 자리한 이 마을은 흔히 말하는 달동네. 불량노후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이 마을에는 현재 80여 가구, 17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산다. 대부분 일용직 종사자에다 노인들로 삶이 팍팍한 이들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주목받지 못 했던 이 마을은 요즘, 청주의 새로운 여행지로 거듭나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벽화 때문이다.
수암골에는 재미있는 벽화들이 가득하다. 무려 100점이 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허름한 집들의 외벽과 골목의 바닥, 심지어 집밖에 놓인 화분과 재활용 의류수거함도 캔버스가 되었다. 이 그림들은 지난해 (사)충북민예촌에서 수암골 일대 공공미술프로젝트 ‘2008충북민족예술제-추억의 골목길 투어 수동 아카이브전’을 준비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것들이다. 프로젝트는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되었다. 마을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벽화를 그려 넣기로 하고, 수암골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을 채웠다.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올해도 계속 이어졌고, 내년에도 빈 벽과 소재가 될 만한 공간을 찾아가며 차근차근 메워 갈 예정이다.
수암골의 벽화가 널리 알려진 데는 전파의 힘이 컸다. 올 초 SBS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카인과 아벨>이 수암골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드라마 9회부터 수암골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인 초인과 영지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갔다.
수암골 여행은 삼충상회에서부터 출발한다. 유일한 가게다. 마을의 규모만큼이나 코딱지만 한 구멍가게다. 보통 이런 가게들은 마을의 이름을 상호로 내세우게 마련이다. 그 원칙(?)에 충실하자면 수암상회가 되어야 할 터. 그러나 아니다. 그럼 혹시 주인의 이름일까. 35년간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주인에게 물으니 바로 아래에 삼충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그것에서 따왔다고 한다. 삼충사는 표충사의 다른 이름으로 1728년(영조 4년) 이인좌의 난 때 순절한 충청도병마절도사 이봉상, 영장 남연년, 비장 홍림 등 3인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 수암골 집 외벽들 | ||
이제 본격적인 탐방에 나서보자. 삼충상회에서 곧장 위로 뻗은 길이 수암골의 뼈대를 이루고, 좌우로 좁은 골목들이 무수히 가지를 치고 있다. 10m쯤 걸어가자 수암골 지도가 벽에 그려져 있다. ‘수암골 15통 골목지도’라고 씌어 있다. 그러나 지도 따위는 필요치 않다. 길을 잃어버릴 만큼 마을이 크지도 않거니와 설령 헤맨다고 해도 그게 골목을 걷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수암골에는 각 집마다 문패가 달려 있다. 이 문패들 역시 벽화작업 때 만들어 단 것들이다. 새롭게 탈바꿈한 골목에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자는 의미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문패는 자그마한 나뭇조각 위에 이름을 쓴 것으로 수수한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수암골 지도 그림을 지나자 다음 길에선 타일벽화가 눈에 띈다.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타일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제목은 ‘솜씨자랑 1’. 이 같은 타일벽화가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가면 또 하나 있다. ‘솜씨자랑 2’다. 서툴고 투박하지만 이 골목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솜씨자랑 1과 2를 잇는 골목의 중간에는 ‘먹보의 입속’이라는 작품이 그려져 있다. 퉁퉁 부은 얼굴의 먹보가 먹어치운 음식들이 터질 듯이 입속에 그려져 있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뼈대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혜원정사라는 작은 절이 나온다. 혜원정사 맞은편에는 이 동네에서 가장 많은 작품들이 있다. ‘진하네 작은 꽃밭’, ‘뚱보가족’, ‘아이스케키가게’, ‘흙장난 하는 아이들’, ‘웃는 아이 삼남매’ 등이 있는데, 뚱보가족이라는 작품은 얼마 전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됐던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군데군데 길바닥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무릎관절이 부담스러운 계단에 꽃이 피어 있고, 좁고 컴컴한 골목길은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피아노 건반으로 변신했다. 무한한 상상력이 골목을 채우고, 그로 인해 그 길 위에 선 사람들의 마음이 즐겁다.
수암골을 걷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히죽거리며 웃는다. 이 역시도 벽화 때문이다. 길을 걷다보면 말뚝박기를 하거나 구슬치기, 딱치치기 따위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리 없는 벽화다. 비록 노인들뿐인 골목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벽화에서 툭 튀어나와 골목길을 휘젓고 돌아다닐 것만 같다. 그 벽화들을 보노라면 잊힌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동네를 구석구석 걷다보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에서 가끔 망치질소리와 재봉틀소리가 들리곤 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다름 아닌 ‘재단사의 집’과 ‘뺏지(배지)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이다. 예전처럼 일이 많지 않아 매일 같이 기계를 돌릴 순 없지만 때때로 일이 들어올 때마다 가내수공업 형태의 공장을 가동시킨다. 특히 뺏지공장은 기웃거리는 낯선 이에게 흔쾌히 내부를 개방하기도 하는데, 구경해볼 만하다. 이 공장에서 한창 때 충청도 내 학교란 학교의 배지는 다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수암골 주변에는 상당산성과 고인쇄박물관 등 곁들여 여행할 곳들이 많다. 상당산성은 백제시대 때 축성된 것으로 성 둘레가 총 4400m에 이른다.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고인쇄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불조직지심체요절’이 발견된 흥덕사지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옛날 방식의 활자 인쇄 체험 등을 해볼 수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