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 희망고문 겪다 도로 연습생 신세…“문자투표 왜 했나” 시청자들 부글부글
지난 1월 종영된 JTBC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믹스나인’. 최종 9인의 데뷔가 무산됐다. 사진=JTBC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하면서 화제성을 띠지 못한 프로그램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마련이다. JTBC의 ‘믹스나인’은 YG를 앞세우고도 시청률 1% 안팎의 고전을 면치 못해 불안한 시작을 알렸다.
YG가 연습생 선발부터 데뷔 이후의 활동까지 담당하겠다고 밝혀온 점을 감안해 국내 활동은 주춤하더라도 해외 활동의 활로가 개척되는 것처럼 보였다. 당초 계획은 데뷔해서 4개월 이상 활동하면서 세계 15개 이상 지역을 투어한다는 것이 었다.
그러나 YG는 결국 최종 합격자들의 데뷔를 포기했다. 각 기획사들과의 협의가 도출되지 않았고, 프로그램이 예상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이유였다. 게다가 YG가 각 최종합격자의 소속사에 “3년 동안 매년 1년의 절반은 각 기획사에서 활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믹스나인’ 9명이 모여 함께 활동하자”는 무리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믹스나인’의 데뷔 무산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최초라는 점에서 더욱 지탄받았다. 심지어 ‘믹스나인’보다 시청률이 낮아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망작으로 꼽혔던 ‘아이돌 학교’ ‘소년24’ 조차 최종 우승자들을 데뷔시켰기에 ‘믹스나인’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의 참여도도 낮은 편에 속했던 ‘소년24’의 우승자들은 정상적으로 데뷔해 지난해 10월부터 ‘인투잇(IN2IT)’으로 활동 중이다. ‘아이돌 학교’의 최종 우승자 9명도 ‘프로미스_나인(fromis_9)’이라는 그룹명으로 지난 1월 무사히 데뷔를 마쳤다.
방영 동안 악마의 편집, 투표 조작 의혹, 저조한 시청률 등으로 잡음이 일긴 했어도 시청자들과의 약속은 지킨 셈이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 유사한 포맷으로 방영됐던 KBS ‘더 유닛’ 역시 UNB와 UNI.T라는 이름으로 남녀 프로젝트 그룹을 각각 성공적으로 데뷔시켜 더욱 비교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시청자들이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아마도 자신들이 기만당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짚었다. 투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시청자들이 직접 방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이다. 방송이 약속한 데뷔를 위해 문자 투표를 진행했던 대중들이 무산됐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사기를 당했다”고 분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시청률이 적게 나온다고 해도 어쨌든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빼먹을 게’ 많은 포맷이라서 계속 이름만 바꾼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올 것”이라며 “그런데 방송이 끝나도 데뷔를 못하는 선례가 남아 버렸으니 이후 방송에서 대중들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데뷔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깨진 상황이니 그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믹스나인에 참가했던 김소리는 YG 양현석 대표로부터 모진 말을 듣기도 했다. 믹스나인 방송화면 캡처.
한편으로는 시청자들 못지않게 상처를 받은 것이 바로 연습생들이다. 장장 4개월 동안 희망 고문을 당해야 했던 그들은 다시 원래의 연습생 신분 또는 소속 그룹으로 돌아가 컴백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가운데는 이미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데뷔의 쓴 잔을 마셨던 연습생들이 끼어 있어 더욱 대중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믹스나인’ 최종 1위로 선발됐던 우진영은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최종 순위 40위에 머물러 데뷔조에 이르지 못했다. 최종 3위인 이루빈의 경우도 ‘소년 24’에 참가했다가 최종 순위 18위로 탈락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연예기획사 홍보기획팀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몇 십 명, 몇 백 명이 참가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쳐도 데뷔할 수 있는 연습생들은 소수인데 이제는 ‘탈락’ 말고도 ‘데뷔 무산’의 공포까지 짊어지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연습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뭐가 됐든 방송을 타는 것은 중요하다. 홍보기획력이 턱없이 부족한 소형 연예기획사 소속이라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워너원처럼 데뷔부터 대형 아이돌로 대접받는 것까지 바라는 게 아니다. ‘프로듀스 101’은 데뷔조로 뽑히지 못한 아이돌도 팬덤 형성만 제대로 되면 JBJ나 IBI처럼 프로젝트 식으로 데뷔에 이를 수 있지 않았나”라며 “최소한의 목표가 얼굴 알리고 인지도 쌓기라면 결국 최종 목표는 데뷔이므로 방송에서 어떤 취급을 받더라도 일단 이름을 올려야 된다. 뭘 해도 도박이라면 기울어진 판인 걸 알면서도 올라탈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아이돌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