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육사 출신 중용·기수파괴 인사에 장군수 축소 추진…“100명 안팎 옷 벗을 것” 소문
송영무 국방부 장관. 박은숙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군 주류 라인은 인사에서 외면 받았다. 그동안 요직을 독식해왔던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은 여러 차례 인사에서 ‘물’을 먹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국방부 장관에 해군 출신 송영무를, 합참의장엔 공군 출신의 정경두를 각각 임명했다. 창군 이래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모두 비육사 출신이 맡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송영무 장관이 여러 의혹에 시달리자 여권에선 기득권을 지키려는 군 주류 세력의 음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수를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육군참모총장 후보군이었던 육사 37기와 38기를 배제하고 39기 김용우를 진급시킨 것이다. 육사 37기는 박근혜 정부 시절 가장 잘나갔던 기수로 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육사 동기들이기도 하다. 지난해 갑질 논란으로 옷을 벗었던 박찬주 대장도 37기다. 한 퇴직 장성은 “37기가 인사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지난 정권에서 수혜를 입었던 군 라인을 배제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면서 “39기에서 육참총장이 배출돼 37기와 38기, 그리고 39기까지 정리하는 효과를 거뒀다”라고 했다.
통상 정권이 바뀌면 군의 주류 세력이 어느 정도 바뀌기도 하지만 육사 중심의 큰 틀은 굳건했었다. 더군다나 지난 10여 년간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육사 출신의 특정 인맥 쏠림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김장수(27기)·김관진(28기) 전 국방부 장관 등이 군에서 대표적인 주류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군뿐 아니라 청와대와 국정원 등 핵심 보직에도 기용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비육사·비주류 파격 인사는 기존의 틀을 흔들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군 내부에서도 남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충격파가 컸다는 얘기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 입장은 확고하다. 국방개혁 성공을 위해선 비육군·비육사 출신들을 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친문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육사 출신들에게 국방개혁을 맡겼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를 거울삼아 군 지휘부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면서 “당초 육군참모총장도 비육사를 임명하려는 논의가 있었지만 군 내부 반발을 감안해 접었던 것으로 안다. 육군·육사 독식의 인사를 개선하는 게 문재인 정부 국방개혁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국방개혁 2.0을 통해 큰 폭의 장군 정원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군 내부는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다. 군 안팎에선 100명 안팎의 별들이 떨어질 것으로 점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장군 정원을 줄이려고 했지만 한자릿수에 그쳤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군 병력 감축에 맞춰 장군도 줄이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선진화된 군을 위해선 슬림화된 정예조직이 필요하다. 군이 장군 진급자들의 기득권을 위해 (정원 축소에) 강하게 저항해 왔지만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군 관계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현 정권이 군을 적폐대상으로만 다루고 있어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장군 정원을 대폭 줄이는 것 역시 경쟁이 치열해져 줄 대기와 육사 쏠림 현상이 오히려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 장성은 “잘못한 게 있으면 매를 맞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군 전체, 그 중에서도 장군들이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면서 “지금 군 내부는 편 가르기를 하는 듯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쪽을 무조건 적폐로 내모는 것은 또 다른 파벌을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군 내부에선 현 정권이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 지난해 깜짝 진급했던 한 장군의 경우 여권 정치인과의 친분이 거론된 바 있다. 또 기수 파괴의 최대 수혜자들로 꼽히는 육사 40~41기 군인들이 정치권 인맥을 대려는 움직임도 포착됐었다. 앞서의 군 장성은 “누구에게 줄을 서면 진급을 할 수 있다더라와 같은 소문이 무성하다. 이러려고 내부 적폐를 캐고 다닌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면서 “지난해 옷을 벗은 한 장군이 정권의 압박이 부담이 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평생을 몸 바쳐 복역했지만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친문 진영은 이러한 군 반발 기류에 대해 ‘육사 출신과 주류 군인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며 폄하하는 모습이다. 국방개혁 2.0에 관여하고 있는 한 여권 관계자는 “그들은 자기들만의 사조직을 만들어 인사를 독식해왔다. 이를 개선하는 것은 오히려 군 사기를 높이는 일”이라면서 “군 적폐청산 작업 역시 극히 소수의 정치군인들과 군에 만연한 부조리를 뿌리 뽑기 위한 일이다. 인사와 결부시키는 것은 마타도어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군 내부 감찰 활동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군 적폐청산위원회가 적발해낸 비리 등에 대한 추가 조사도 벌일 계획인데, 여기엔 방산비리 등 굵직굵직한 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군 일각에서 제기되는 불만들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속내로 읽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