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강경발언으로 ‘보수 결집’ 노리지만 당 내 반발까지…안, 보수 유권자가 ‘대안’으로 바른당 선택 기대
한국당 내부에선 “이번 지방선거 최대 악재는 ‘홍준표 리스크’”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 후보들 일부는 “전패하자는 얘기냐. 영남권에서도 홍 대표를 여당을 돕는 ‘민주당 2중대’로 부른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홍준표 사퇴론’이 불거졌다. 4선의 강길부 의원은 5월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한국당의 상황을 보면 ‘과연 이것이 공당인가’라는 의문이 든다”며 “이번 주까지 사퇴를 안 하면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탈당을 시사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은숙 기자
6·13 지방선거에서 샤이 보수의 향배는 ▲원조 보수인 한국당 지지 ▲바른미래당에 대한 전략적 선택 ▲투표 불참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현재 얼굴이 홍 대표와 안 후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진영은 ‘미워도 홍준표냐, 그래도 안철수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다만 국정농단 게이트 이후 지속된 진보로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계속된다면, 샤이 보수를 자처하면서 지방선거를 보이콧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샤이 보수가 깨어날 환경은 조성됐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과정에서 불거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둘러싼 갈등,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한 개막식 등은 샤이 보수층을 자극했다. 직전 북한 병사의 판문점 귀순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점도 샤이 보수를 꿈틀거리게 했다. 남북정상회담 전 정국 최대 이슈는 친문(친문재인)계와 드루킹의 커넥션 의혹이었다. 그 이전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낙마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이 정국을 덮었다.
당시만 해도 샤이 보수는 지방선거 변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것처럼 보였다. 한국당 복수의 관계자는 “샤이 보수만 출현한다면, 대구·경북(TK), 부산·경남·울산(PK) 등 영남권 5곳과 충남지사까지 6곳의 광역자치단체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외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해외사례는 1992년 영국 총선이다. 당시 여론조사 승자는 노동당이었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보수당이 7.6% 차이로 앞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꺾은 것도 샤이 보수의 힘이었다. 지난해 5·9 대선에서도 샤이 보수는 실체를 드러냈다. 대선 초반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홍준표 대표는 막판 상승세를 타면서 결국 안철수 후보를 꺾고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보수진영의 실낱같은 희망은 산산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9명가량은 남북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때 악의 축으로 불린 김 위원장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북한의 비핵화·평화 의지에 대한 국민인식 급변했다.
보수야당의 전략 부재는 보수층의 숨바꼭질에 불을 댕겼다. 특히 홍 대표의 반공 인식은 당내 강경파인 친박(친박근혜)계조차 비판할 정도다. 홍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위장평화쇼”, “김정은과 남측 주사파의 숨은 합의” 등으로 비판하자, 친박계 유정복 인천시장은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발언”이라며 “당 지도부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홍준표 퇴출에 힘을 모으자”, “홍 대표가 보수면 파리가 새”라고 일갈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다수의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것은 전쟁 공포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홍 대표의 발언은 찬물을 끼얹는 수준이 아니라 대단히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말하는 것처럼 비친다. 남는 것은 고립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미등록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했다는 이유로 4월 27일 과태료 2000만 원을 부과하자, “참 웃긴다. 중앙선관위가 아니라 민주당 선관위”라며 5월 1일 지방선거 부산시당 필승 결의대회 현장에서 불만을 터트렸다. 이쯤 되면 한국당의 지방선거 전략인 ‘돌아와요 보수층’ 플랜이 시작도 못 한 채 끝맺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른미래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안 후보는 “완전한 비핵화는 큰 의미를 지닌다”면서도 “합의보다는 이행이 중요하다”고 중립적 입장을 취했다. 같은 당 유승민 공동대표도 민주당이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자, “논점을 흐리고 너무 앞서가는 얘기”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국당과의 차별화 전략을 썼지만, 결론은 대동소이한 셈이다.
당 안팎에선 “이러다가 지난해 5·9 대선의 데자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던 안 후보는 선거 막판 보수표가 홍 대표에게 이동하면서 3위에 그쳤다.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의 뒤를 쫓고 있지만, 선거 막판에 가면 김문수 한국당 후보가 역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안 후보 측의 선거 전략 미스는 이 같은 우려에 불을 지폈다. 안 후보가 드루킹 파문 당시 경기 파주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은 대표적인 패착으로 꼽힌다. 드루킹 파문 전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 vs 안철수’의 양자구도였다. 하지만 드루킹 파문 직후 안 후보는 친문 때리기에 집중했다. 드루킹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난 ‘이명박(MB) 아바타’ 여론이 다시 회자됐다. 이는 안 후보의 대선 패배 원인 중 하나였다. 안 후보의 드루킹 공세는 양자구도를 희석시켰다. 안 후보가 남북정상회담 직후 ‘박원순 때리기’로 전략을 수정한 이유도 이 같은 선거 전략 실패와 무관치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른미래당은 안 후보와 함께 수도권 삼각편대를 이룰 경기지사와 인천시장 후보를 4월 말까지 내지 못했다. 바른미래당 인재영입 1호인 정대유 전 인천경제청 차장은 결국 인천시장 출마를 포기했다. 안 후보 측은 “안철수 혼자 선거를 치르냐”라고 유 대표 등 당 지도부에 화살을 돌렸다. 안 후보의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병 재보선은 ‘안철수 vs 유승민’ 대리전으로 치러지면서 내부 알력 다툼의 진원지로 전락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안 후보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보수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이다. 홍준표 체제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이 바른미래당을 민주당 견제세력으로 세워주는 게 핵심이다. 전 평론가는 “문 대통령도 홍 대표도 싫어하는 지지층이 한국당 대신 바른미래당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도 “판을 바꾸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샤이 보수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엎을 변수는 아니라고 분석한다. 민주당 한 정책통은 “샤이 보수가 선거 변수가 되려면, 1·2위 후보 지지도 격차가 10% 정도에 불과해야 한다”며 “지금 그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당·청 지지도가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샤이 보수가 ‘미워도 홍준표’를 택하든 ‘그래도 안철수’를 택하든 민주당 승리로 귀결한다는 얘기다.
보수진영이 기대하는 시나리오는 5월 중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이 엎어지는 것이다. 6·1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불발되거나, 극적 만남에도 합의가 틀어진다면 상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경우 여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호재로 작용하든 악재로 전락하든 보수진영의 결집은 외부변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반전 모멘텀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권 한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 전보다 더 일방적인 게임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
‘미친 존재감’ 박지원 빅이슈마다 뉴스메이커로 등장 노병은 죽지 않았다. 정치 9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정국의 변곡점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남지사 출마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당분간 정치 변방으로 물러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박 의원은 특유의 정치 감으로 존재감의 불씨를 살렸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결성의 마중물 역할도 박 의원이 했다. 애초 박 의원은 정의당과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반대했다. 같은 당 정동영 의원 등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목소리를 냈지만, 박 의원 등의 반대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양당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에 불을 댕긴 것은 박 의원의 3월 1일 인터뷰였다. 박 의원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가속화되는 보수에 더불어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이 개혁 세력으로 합치는 데 적극적으로 동조한다”며 “조배숙 대표와 정동영 의원이 들으면 좋아할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이후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구성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평화당은 3월 2일 공동교섭단체를 추진키로 한 뒤 사흘 뒤인 3월 5일 창당 이후 처음으로 열린 워크숍에서 이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정의당 내부 기류도 박 의원 인터뷰 이후 확 바뀌었다. 이정미 대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보도 이후 당직자들에게 당내 분위기를 타진했다. 다수의 당직자는 “당원들 반발로 쉽지 않을 거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하지만 이후 이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가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해도 정체성은 안 변한다”며 당원 설득에 돌입했고 4월 2일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공식 출범했다. 정의당 한 당직자는 “박 의원이 찬성 기류를 보이면서 급물살을 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 의원은 당이 민영삼 최고위원의 전남지사 전략공천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출마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줄타기를 했다. 박 의원은 “정의당과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 5개월째 이어진 부인 병간호 문제를 해결하면 출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출마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박 의원 특유의 정치 노련미”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뉴스메이커로 등극했다. 남북정상회담 원로 자문단으로 참여한 박 의원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직후 열린 환영 만찬에 초대받았다. 그는 이후 각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 세례를 받았다. 박 의원은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더 호탕하고 스마트하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반공 논리를 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선 “고춧가루를 뿌린다”, “땡깡은 시대착오적” 등으로 날을 세웠다. 야당 한 관계자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키맨이라면, 박 의원은 외곽에서 보수진영의 공세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