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김석수 총리가 드디어 국회 임명동의안을 받았다. 국회 인사청문회의 검증을 받은 총리로서 국민의 기대가 크다. 그러나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인사청문회의 생명인 형평성이 어긋났다는 비판이 많다. 이번 임명동의안이 묵시적인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면 이는 김석수 총리 본인이나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총리는 어떤 경우이건 떳떳하게 검증받고 당당하게 집무를 해야 한다. 국민들은 후보자를 한치의 착오없이 평가하여 총리로서 손색이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은 총리를 믿고 따르며 총리는 국정수행에 필요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김석수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열의가 낮았다. 총리인준안이 이미 두 차례 부결된 상태에서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비리폭로전이 가열되자 자연히 청문회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번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청문회의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이끌면서 통과의례처럼 질문을 마친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결국 부실 청문회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번 총리 인사청문회는 헌정사상 의미가 컸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엄격한 검증 잣대를 마련하여 나라 발전에 중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이번 청문회가 부실하였다는 것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다시 무너뜨렸다는 뜻이다. 결국 정치논리에 휘말려 국무총리제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 셈이다.김석수 총리에 대해서 일반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자녀들이 생활비와 용돈으로 억대의 예금통장을 갖고 있어 증여세 탈루의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또 삼성전자 실권주를 배당받아 거액의 시세차익을 남겨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더 나아가 토지상속, 변호사 소득신고, 장남의 병역문제 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의혹들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추궁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그러나 결론은 김석수 총리의 불법행위나 도덕적 결함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장상 전 총리서리는 청문회 순서만 바뀌었다면 무난히 인준을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만큼 청문회가 형평성이 맞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상 전 총리서리의 주변사람들에 따르면 주소를 옮기고 실제 이사를 못한 것은 부동산투기 때문이 아니라 가정형편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아들의 미국 국적취득은 이중국적을 정리 안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법무부 통고 때문에 서두른 것이라고 한다.
학력오기는 본의와 관계없는 단순 실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임총리서리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문과 언론보도가 너무 일방적이고 편파적이 아니었는가? 국회의 파행은 부실청문회에 그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울분이 서린 공적자금에 대한 국정조사를 1년 만에 또다시 무산시켰다. 민주당과 정부는 잘못된 것을 밝히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자료제출과 증인채택에 극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나라당은 국정조사를 뜻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정치적 실익이 없이 면죄부만 줄 것을 우려하여 서둘러 유보에 나섰다.
국민들은 외환위기의 고통을 겪고 그것도 모자라 1인당 4백만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부담해야하는데 정치권은 정치적 계산만 앞세워 진실을 땅에 묻고 있는 것이다.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출과 대북 뒷거래 의혹도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가 폭로되자 양당은 남북통일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상대방 쓰러뜨리기 차원에서 새로운 죽기 살기 싸움을 시작했다. 북한의 내부 변화는 물론 주변정세변화가 심상치 않다. 북한의 개방과 경제 발전에 주도권을 가져야 할 우리나라는 정치권의 싸움 때문에 대북정책 자체가 방향을 잃고 있다. 실로 국민에 대한 정치권의 우롱과 국정표류가 심각한 상황이다.
정치권은 즉각 자기 파괴적인 정쟁을 멈추고 국민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다음 모든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정당한 정책대결과 깨끗한 선거를 선언해야 한다. 진실규명을 위해 국회와 정부는 국정조사와 계좌추적 등 필요한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이렇게 하여 12월 대통령 선거가 나라 발전의 새 희망을 찾는 국민들의 축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