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수사단이 먼저 검토 요청” vs 수사단 “그 전부터 개입 시도”
문무일 검찰총장은 16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 출근길에 ‘총장이 수사에 개입했다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정당한 직무 수행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 곤혹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법률가로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도록 그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겠다”며 수습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외부가 아닌 내부, 그것도 검사장급이 수사를 이끌고 있는 팀에서 검찰총장에 대해 대놓고 항명했기 때문. 일선 검사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15일 오전, 처음 문무일 검찰총장을 향해 처음 화살을 날린 것은 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사법연수원 41기)였다. 안미현 검사는 대검찰청 등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로, 기자회견에 참석해 문 총장을 직접 지목해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외압을 폭로했던 안미현 검사.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 소환조사 방침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의 질책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권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검토 결과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한 뒤, 문 총장이 이영주 춘천지검장의 대면보고 자리에서 권 의원을 소환하려 했다는 것을 심하게 질책했다”고 주장했다. 또 “문 총장이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일반 다른 사건과 달리 조사가 없이도 충분히 기소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소환조사를 못 한다’며 이해할 수 없는 지적을 했다”며 수사 외압이라고 주장했다.
안미현 검사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무일 총장도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안 검사의 주장이 처음 나왔을 때는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는 신중론이 검찰 내 지배적이었다. 사건이 더 확대될 것으로 쉽사리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단장 양부남 광주지검장)도 안 검사를 지지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분위기는 급변했다. 수사단은 문 총장이 수사과정에 관여했다며, 부당한 개입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이 안 검사의 기자회견 이후 기다렸다는 듯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문 총장이 출범 당시 공언과 달리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대놓고 항명을 한 셈이다. 실제 보도자료 배포 여부와 내용 역시 일체 대검에 보고되지 않았다.
채용비리 수사단은 보도자료에서 “양부남 단장이 지난 1일 권성동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강원 강릉)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계획을 보고했는데, 문 총장이 대검찰청 차원의 ‘전문자문단’ 심의를 거쳐 영장 청구를 결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털어놨다. 수사단 출범을 앞두고 “어떤 보고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수사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문 총장이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고 지적한 것이다.
일선 검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를 문제 삼은, 사상 초유의 항명 파동이기 때문. 익명을 요구한 경북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원래 국회의원이 거론되는 정도의 수사는 다 검찰총장에게 보고를 하고 처분을 받아서 움직이는 게 우리(검찰)에겐 상식”이라면서도 “이번에는 문무일 총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한 부분이 있어 다소 명분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당연했던 상식이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같은 지역의 다른 고위급 검사는 국민들의 생각과 괴리가 있던 것이 문제로 드러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리(검찰) 안에서는 국회의원 소환과 영장청구 여부를 보고하고 허락을 받는 게 당연하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국회의원이라서 특별히 챙기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느꼈다”며 “결국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문 총장 스스로 얘기했던 게 명분을 잃게 만든 셈”이라고 지적했다.
수사외압 논란 속에 문무일 검찰총장은 16일 오전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문무일 총장을 편드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이들은 수사단이 대검찰청에 먼저 사건에 대해 살펴봐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법무부 관계자는“문 총장이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은 오히려 수사팀이 먼저 얘기를 해오지 않았냐. 그때부터 문 총장이 ‘보고받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라고 얘기한다.
실제 지난달 말, 권성동 의원 소환을 앞두고 수사단은 대검찰청에 “수사가 끝났는데 수사심의위에 회부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진행 내용은 밝히지 않고 수사심의위에 회부해 달라고 했다는 것인데, 수사심의위 회부는 검찰총장이 하게 규정돼 있다. 이에 문무일 총장과 대검 수뇌부는 고민 끝에 수사심의위를 받기로 결정했는데, 내용을 알아야 회부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느냐며 수사내용을 보내라고 한 뒤, 자료를 수사단으로부터 넘겨받아 내용을 살펴봤다는 설명이다. 수사지휘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수사단이 수사심의위 회부를 요청하면서부터 수사지휘권 논란이 빚어지기 시작했다는 반론이다.
하지만 수사단 측은 수사심의위에 회부하게 된 과정도 문제라고 설명한다. 수사단 흐름에 밝은 한 검찰 관계자는 “대검 측에서는 수사심의위에 수사단이 먼저 올려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전부터 자꾸 대검찰청이 권성동 의원 소환 등에 대해 개입하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수사심의위를 제안한 것”이라며 “그 앞에 개입했던 부분들까지 더 알려지면 대검은 물론, 검찰이 더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검찰청 측도 이 같은 추가 의혹 가능성에 즉각 반발했다. 사건 보고 계통에 있는 핵심 관계자는 “부끄러운 점 하나 없이 사건을 지휘했다”며 “만에 하나 그 전에 개입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수사단에서 당당하게 공개해달라”고 반발했다.
대검찰청이 직접 수사권이 없는 탓에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수사단은 문무일 총장 참모진 중 김우현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사법연수원 22기)을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권리방해 등)로 기소할 방침이다. 수사단은 지난 3월 15일 대검 반부패부 압수수색 이후 김 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뒤 불구속 기소하기로 내부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총장을 보필하며, 전국 검찰청에서 진행하는 특수 수사에 대한 보고·지휘 책임이 있는 반부패부장을 ‘부당한 수사 개입’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대검찰청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수사권이 없다.
앞선 경북 지역의 한 검사는 “대검찰청이 지휘는 하지만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수사단이 기소를 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인사권을 바탕으로 양부남 단장과 수사팀을 교체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논란이 더 커질 것이고, 그렇다고 김우현 반부패부장이 기소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검찰총장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검찰청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는 것. 또 다른 서울지역의 한 검사 역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말을 아끼고 있던 문 총장이, 옷을 벗으면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몰린 셈”이라고 풀이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