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을 하려면 정치권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경유착의 틀 안에서 편법과 비리에 의존한 경영을 하게 된다.
또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남북간의 적대관계 때문에 경제협력을 추진하려면 실정법을 위반하는 밀실거래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하에서 기업인으로 남북경협을 주도해 오다 헤어나기 어려운 난관에 부딪쳐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이다.
현대의 대북사업 추진은 남북간 경제협력의 물꼬를 터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보통 의미가 큰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이 걸린 국가적인 사업을 일개 기업이 밀실작업을 통해 추진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실제로 남북경협의 과제를 놓고 북한-현대-정부는 비밀리에 3각 관계를 형성했다. 정부는 현대를 통해 대규모 자금지원을 하고 북한과 함께 정치적 이득을 공유했다. 이를 위해 5억달러 규모의 불법송금까지 했다.
현대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발 등 대북사업을 독점하는 것은 물론 구조조정, 자금지원 등에 있어서 다양한 혜택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현대는 비자금을 조성하여 정치권에 제공하고 정경유착을 심화시켰다. 1백50억원+α의 비자금 조성에 대해 일파만파의 의혹이 일고 있다.
이렇게 되자 남북경협은 순수성을 잃고 부작용을 낳았다. 첫째 남북경협사업이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정치적 사업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퍼주기 지원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남남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핵개발과 북한정권의 연장을 도와주는 지원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둘째 남북경협에 사운을 걸고 있는 현대그룹의 경영에 큰 타격을 주었다. 현대그룹은 일반인들로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소떼몰이 방북을 시도하여 남북경협의 물꼬를 텄다.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은 부실이 심화되면서 갈기갈기 나뉘었다. 자동차 계열과 중공업 계열이 분리해 나간 후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이 정통을 이어왔다. 이런 상태에서 대북사업이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누적시키자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구심점인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현대그룹의 운명은 앞이 안 보인다.
셋째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하면서 정치권은 비자금으로 더욱 부패하는 양상을 띠었다. IMF 외환위기로 수없이 많은 실업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고통을 호소하는데 정치권은 쓰러져가며 대북사업을 하는 기업의 비자금으로 잔치판을 벌인 셈이다.
정몽헌 회장은 대북사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손으론 정치권과, 다른 손으론 북한 당국과 죽음의 악수를 했다. 민족분단의 비극을 끝내기 위한 발판으로 남북경협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가져온 현재의 방식대로 계속해서도 안된다.
남북경협은 정부의 주도하에 건전하고 투명한 국민사업으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다음 현대 등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자금지원 등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남북경협은 남북한 정권의 정치논리로부터 독립성을 지켜야 하며 호혜원칙에 입각하여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리하여 동북아시아 중심국가로서 통일한국의 기반을 만드는 역사적 사업으로 차질 없이 수행해야 한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