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남 | ||
젊은 네티즌들의 지향과 인물 평가의 집약적 반영인 셈인데, 너무너무 잘 알려진 명망가들이다. 이런 선택은 그 분들이 이룩한 업적과 대중성 획득 차원에서 매우 당연하려니와, 특정 분야에서의 개인적 ‘성공’을 리더의 개념 속에 포함시킨 인상 또한 짙다.
리더다운 리더를 요구하는 소리가 갑작스럽다 할 정도로 높다.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 전경련 쪽에서는 아예 마가릿 대처, 리콴유, 박정희, 콘라트 아데나워 등을 예로 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문제 삼았다. 그들을 본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뜻이야 이해하지만,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른 나라와 우리를 맞바로 비교하는 발상이 지나치다. 하물며 박정희 대통령이라니. 그 속에는 ‘좋았던 옛시절에 대한 어떤 그리움’도 섞여 있을 게다. 그렇다면 그의 한마디 호령에 산천이 떨던 시절로 시계바늘을 돌려야 한다. 지금처럼 만만한 청와대 비판은 꿈도 꾸기 어렵다. 여의도에서 미리 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를 건설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아직도 ‘원로장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곧 프랑스’라고 했던 드골처럼, 그 역시 싱가포르의 다른 이름이다. 요즘은 독립 직전(65년)까지의 행적을 다룬 자서전(The Singapore Story)에서 약속한 ‘속편’을 쓰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시종 국부(國父) 대접을 받는 사람과 5년짜리 대통령의 시대적 정치적 입지를 동렬에 놓고 얘기하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닐 뿐더러, 어디서 어떻게 닿고 어긋나는지 막막하다.
조지 가드너가 쓴 <여수상 대처>(Magaret Thatcher)에 따르면, 그녀의 ‘영국병’ 퇴치는 노조활동 규제와, 사회복지 축소와, 총체적 긴축정책이 근간이다. 덕분에 소련의 <프라우다>로부터 ‘아이언 레이디’(강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옥스퍼드를 나왔으면서도 모교 출신 대정치가에게 전통적으로 수여하던 명예박사학위를 거절당했다. 738 대 319라는 더블 스코어로 교수회의에서 부결된 이유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삭감 탓이다. 전임 수상이었던 히드, 맥밀란, 애틀리, 윌슨 등이 받은 학위를 그래서 받지 못했다.
식료품 잡화상의 딸로 태어나 여자로서는 ‘기적’이라할 당수(보수당)를 거쳐 수상 자리에 오른 대처는, “나는 타협의 정치가가 아닌 소신의 정치가”라고 했다. “우리가 가는 방향과 방법을 대담하게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구에 역사책의 각주(脚註)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자신과 국민의 인내를 다짐하고 강조했다.
재계 총수들이 지난 날의 외국 지도자들 이름까지 열거하며 대통령의 강단을 촉구하는 이면엔 보수 회귀를 바라는 심사가 물론 깔려 있다고 본다. 따라서 대처식 소신을 참여정부의 개혁 마인드에 맞게 발전적으로 응용할 수는 없을까. 역사책의 ‘각주’로 나가떨어지지 않는 방안도 여러 가지일 테니까.
반론에 늘 즉각적인 노 대통령의, 차라리 능청스런 인내를 동시에 보고 싶다. 취임 9개월 동안 언론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클린턴도 1994년 2월3일, 수천 명이 모인 워싱턴 힐튼호텔 조찬회에서 말했다. 자기는 자신에 대한 조간 뉴스를 읽느라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다고 실토한 끝에, “그러나 5년이 지나면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라고 단언했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