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굳이 세계화시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날이 갈수록 나라간의 국경선이 낮아지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고 아예 해외에다 둥지를 틀겠다고 이민가는 사람도 많다. 더군다나 요즘 몇 년 동안 나라경제가 흔들리고 교육여건이 나빠지면서 ‘이민열풍’이라는 말이 엄살이 아닐 정도로 이삿짐 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거기에다 자식교육을 위해 엄마는 외국 나가있고 아버지는 한국에서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도 많고, 전투적인 노조를 피해 중국 등 외국에다 투자를 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등 요즘 한국사회는 온통 둥지를 떠나려는 이탈열풍에 휩싸여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제가 틀어놓은 둥지가 더 이상 둥지 구실을 못하게 되면 미련없이 떠나 다른 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기 마련이다. 사람이라고 해서 별로 다를 게 없다. 오늘의 삶이 어렵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곧잘 이민을 생각한다. 자녀의 조기유학이나 원정출산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지만 따지고 보면 해외에 발판을 만들려는 일종의 간접이민이다.
따라서 고국을 떠나 해외에다 새로운 둥지를 틀겠다는 이민자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민을 간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더러 성공한 이민자들의 모습이 매스컴에 소개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몇 안되는 성공 케이스일 뿐이다. 이민자들의 40%가 극빈자로 살고 있다는 미국의 최근 통계는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말해준다. 게다가 살아가면서 평생 앓아야 할 향수병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명절 때면 피붙이들끼리 모여 웃고 떠들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푸근함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게다가 사람에겐 입신출세를 하고 치부(致富)를 하면 그 성공을 비추고 확인해줄 거울이 필요한 법이다. 한마디로 일가들이나 학교동창, 하다 못해 어려운 시절 신산(辛酸)을 같이했던 옛 친구들이 자신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칭찬해줄 때 그 성공이 더욱 빛나는 법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자신의 성공을 비추어 볼 거울이 없다. 성공한 이민자들이 때때로 뭔가 허전한 감상(感傷)에 젖어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성공을 비추어 줄 거울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시대에 이민을 무조건 백안시할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아무 준비도 없이 친구가 강남 간다니까 따라 나서는 식의 무모하고도 충동적인 이민열풍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