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여든다섯. 스물아홉 살 때인 1947년 중의원에 당선된 이래 56년 동안 무려 20선(選)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의원직이 가히 천직(天職)이라 할만하다.
지난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찾아와 중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73세 정년제’를 예외없이 적용하겠다며 사실상의 은퇴를 요청할 때만 해도 나카소네는 “과거 당으로부터 종신 비례대표 1순위를 약속받았다”며 “은퇴요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평생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보니 하루아침에 ‘천직’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 뒤 그는 11월9일에 있을 중의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사실상의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총리 출신의 20선 의원도 세대교체라는 대세를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정계은퇴가 못내 서운했던지 “의원배지는 떼더라도 정치에 대한 나의 정열과 사명감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라는 토를 달았다.
한여름 동안 푸른 잎을 자랑하던 활엽수도 가을이 되면 누렇게 말라 낙엽으로 땅에 묻히고 그 자리엔 이듬해에 잎으로 돋아날 새싹이 자리잡는 것이 대자연의 섭리다. 인간사의 이치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흐르듯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흘러드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공자가 냇가에서 흘러가는 세월의 덧없음을 탄식했다는 이른바 ‘천상(川上)의 탄(嘆)’도 그런 대자연의 섭리를 꿰뚫어 본데서 나온 명구(名句)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흘러 쉬는 일이 없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며칠 전 한국인의 실질적인 은퇴연령이 남자는 68세, 여자는 67세라는 통계가 나왔다. 실질적인 은퇴연령이라는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안돼 있어 그 나이까지 뭔가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 가운데 네 번째와 세 번째로 높다는 것이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해서 한참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이 20~30년 동안 더 일을 해야 한다니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 아닌가. 요즘은 퇴직연령이 더 빨라져 38세까지 내려가는 바람에 ‘사오정’ ‘오륙도’에 이어 ‘삼팔선’이 직장인의 데드라인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직장인의 은퇴시기가 앞당겨지는 세상에 나이 60~70에도 굳세게 ‘천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야말로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집념으로 금배지를 고수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그들이다. 그동안 몇 차례나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의석을 지키고 있다. 아무리 정치개혁을 외치고 세대교체를 떠들어도 그들에겐 쇠귀에 경읽기(牛耳讀經)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무대는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배우는 옛날 흑백영화 시절에 활약하던 왕년의 배우들 그대로다. ‘산천은 의구(依舊)한데 인걸은 간데 없고’ 운운하는 건 옛날 시조에나 나오는 구절이다.
요즘은 산천은 바뀌어도 인걸은 의구한 세상이다. 디지털시대에도 아날로그사고를 가진 정치인들이 버티고 있으니 우리 정치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