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나는 지금 좋은 책을 보고 있다. ‘선사들의 안목과 말씀’이라는 부제가 붙은 <숨길 수 없는 말>. 이 책을 엮은 함현 스님이 말한다. 발 밑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명사(鳴砂)의 여운처럼 ‘나’ 없이 흐르는 살아있는 법음(法音)은 한순간도 자신의 발바닥 밑을 떠나는 일이 없다고. 그 살아있는 법음에 귀를 열고 고집 없는 눈빛으로 태평한 나날을 여는 것이 수행이라고. 달마선사에서 경허선사까지 깨달은 이의 ‘말 아닌 말’이 고집 어린 내 눈빛을 가라앉힌다. 나는 지금 경허선사의 참선곡, 단 한 줄에 마음을 주고 있다. 살 자리를 찾지 못해 억울하게 죽어간 충격적 죽음이 한 문장을 오랫동안 곱씹게 한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정말로 꿈 같은, 악몽 같은 사건이었다. 아니, 그것은 빨리 깨고 싶은 악몽 그 자체였다.
김선일씨, 그의 죽음은 죽을 자리를 찾아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공포에 질려 살라달라고, 죽고싶지 않다고 애원하던 처절한 모습은 살 자리를 찾아간 것이었다. 아벨의 억울한 피가 하늘을 깨웠던 것처럼 억울한 피는 언제나 해원(解寃)을 요구한다.
공식적인 전쟁은 끝났어도 이라크의 저항은 끝나지 않고, 줄기차고 거셌다. 전쟁중에 죽은 미군보다 전쟁이 끝났다는 부시의 선언 이후에 죽은 미군이 더 많았다. 힘으로 이라크를 지배하고, 자신이 곧 세계라며 세계의 여론을 무시하던 미국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대신할 피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UN의 승인도 받지 못한 침략전쟁이었다. 최소한의 도덕성도 없는 전쟁에 미국편을 들 희생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파병을 한 스페인이 철군하고, 89명을 파병한 책임을 물어 덴마크의 국방부 장관이 물러났다. 전쟁당사자인 영국조차 이스탄불 영국대사관에 폭탄테러가 터지자 추가파병을 지연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가겠다고 덤빈 것이었다.
지난 역사에서 ‘침략전쟁’으로 인해 오랜 기간 엄청난 고난을 겪은 우리가 침략전쟁으로 평가되는 전쟁에 미국편을 들어 전투병력을 보내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굽신거리는 외교는 하지 않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전투병력을 보내면서 ‘평화재건’을 강조한다. 이라크는 원한 적도 없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민간인에 대한 살상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파병을 연기하고 철회하지 않는 한 김선일씨의 비극은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 해원이 아니라 비극의 악순환이다.
이슬람권은 넓고 우리는 위험하다. 파병의 결정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한번도 걱정하지 않았던 테러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 됐는데 도대체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국익이 있는가.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