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우리 역사에서 그렇게 강했던 이는 종종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강했던 역사는 드물었습니다. 거대한 중국 옆에서, 대륙으로 나오고자 하는 일본의 야심 때문에 아래 위로 어지러울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인 상황이 큰 이유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한반도의 딸인 것이 부끄럽거나 절망스럽지 않습니다. 기득권층의 사대주의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큰 나라 중국을 옆에 두고도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우리의 언어, 우리의 의상, 우리의 밥상,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켜올 수 있었던 자존심은 그 자체 힘이니까요.
‘자주’와 ‘자존심’을 생각할 때 그저 뿌듯해지는 우리 역사의 정점에 고구려가 있습니다. 고구려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정통국사의 중심입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장수왕은 신라의 문무왕이나 고려의 왕건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자존심입니다.
그 역사가 도둑맞고 있습니다. 역사는 사실인 줄만 알았지, 도둑맞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한 터라 의아하고 기이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아편전쟁 이후 긴 잠을 잤던 중국대륙이 세계사에서 패권놀음의 중심으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함께 우리 역사를 훔쳐가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중국은 왜 우리의 족보를 훔쳐가려 하는 걸까요? 중원에 있었던 수가 고구려에게 망하고 당태종도 고구려를 치려 했다가 쫓겨가지 않았습니까? 그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하기는 했어도 그 이후로도 고구려 땅은 중국 영토에 포함되지 않고, 우리 남북조 시대의 한 중심축인 발해로 거듭납니다. 역사가 자명한데 중국이 탐욕스럽게 고구려에 집착하는 속셈은 무엇일까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고구려사는 근본적으로는 북방영토의 문제고, 현대사에서 그것은 간도영유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간도를 아시지요? 한반도만큼이나 넓은 그곳은 백년 전만 해도 우리 땅이었습니다. 그 간도가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1909년, 일본과 중국의 간도협약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이 중국에 우리 땅 간도를 넘길 수 있었을까요? 바로 1905년 을사5조약으로 우리의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을사5조약은 강압 속에서 맺어진 불평등조약입니다. 그 자체로도 당연 무효지만, 50년대 초반 일본이 중국과 맺은 조약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그 조약 이전에 일본과 중국이 맺은 모든 조약은 무효입니다. 어떻게 되는 걸까요? 당연히 간도협약도 무효가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남과 북이 분단된 상태로 서로에 대해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간도땅까지 돌볼 여력이 없지만 우리가 통일이 되면 간도문제는 외교문제의 핵이 됩니다. 중국은 그 때를 대비해서 그 많은 돈을 들여 고구려 역사를 훔쳐가는 것입니다.
중국이 하는 일을 보니까 힘이 없으면 역사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관한 한, 남과 북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외교적 부담이 있더라도,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느 인간이 조상 팔아먹고 잘 산답니까?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