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출자한도 높아지면 비은행 부문 강화 가능…예보, 지분 가치 띄워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노려
서울 중구 소공로 51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사. 박정훈 기자.
우리은행은 지난 21일 공시를 통해 “경영 효율성 제고 및 사업 다각화를 위해 지주사 전환의 필요성과 효과, 절차 등에 대한 검토를 진행한 결과 종합금융그룹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주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내년 초 출범을 목표로 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이 지주사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비은행 부문의 강화를 위해서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출자한도 제한이 없어 인수합병을 통한 비은행 부문 강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현재 은행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자기자본의 20% 이상 출자할 수 없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금융지주회사법을 적용받아 자기자본의 130%까지 출자 여력이 확대된다. 우리은행의 자기자본은 약 20조 원으로, 출자 한도는 4조 원이다. 기존 출자금 3조 3000억 원을 제외하면 출자 여력은 7000억 원에 그친다. 그러나 지주사로 전환하면 출자금액은 26조 7020억 원으로 늘어난다. 그만큼 사업 확장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은행권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사업 확대에 한계에 다다른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우리은행은 당초 지난해 지주사 전환을 목표로 삼았다. 지난해 2월 조직개편을 통해 미래전략단을 신설하고 준비 작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3월에는 지주사 전환 실무 작업 자문사로 김앤장과 삼일 회계법인 등을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갑작스러운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지주사 전환은 무기한 연기됐다. 우리은행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확신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금융권에 현안이 많은 데다 지난해 10월부터 불거진 채용비리 의혹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외유성 출장 의혹 등의 중심에 놓여 다른 은행들보다 상황이 어려웠다. 지주사로 전환하려면 금융당국의 허가가 필요한데, 오히려 금융당국의 조사 대상이 돼버린 것.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달 초 “금감원장 교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 금융권 안팎의 현안이 많아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 문제가 나올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의 전격적인 지주사 전환 선언은 금융당국과 교감에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에 대한 의지는 금융위원회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우리은행 지분에 대해 ‘선 지주사 전환, 후 지분 매각’을 결정하면서 힘이 붙었다. 지난해 말 기준 예보는 우리은행 지분 18.43% 보유하고 있다. 예보가 이같이 결정한 이유는 보유 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주가가 상승해 예보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가치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 지난해 말 조세특례제한법이 개정되면서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 후 정부 지분 매각이 이뤄질 경우 지주사에 부과되는 징벌적 과세 부담도 해소하게 됐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정부 지분을 보유한 채 지주사로 전환해도 부담이 없고, 예보 입장에서는 지주사 전환 후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노릴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우리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시장에서 경쟁이 불리했다”며 “지주사 전환을 완료하고 일정 기간 후 매각 가치를 최대화하는 범위에서 조속하게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주사 전환은 정부가 보유한 잔여 지분 가치를 높이는 데도 타당한 방향”이라며 “지주사 전환 완료까지 7개월가량 걸린다고 보고, 잔여 지분 매각도 그 이후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가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은행 또한 인가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이 인가 사항이니만큼 인가를 해주는 쪽에서 지주사 전환과 지분 매각에 대한 계획을 밝혀주었기 때문에 확실해진 것”이라며 “과점주주들도 파이가 커져야 협력 사업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예전부터 모두 지주사 전환에 공감해왔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현 정부 기조를 보면 지주사를 통한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를 추구하는데, 우리은행 또한 그 일환일 수 있다”며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비금융지주 체제였던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전환된다면 상징성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은행은 2001년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 우리금융지주로 출범했으나 2014년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 지분 매각의 효율성을 위해 지주사 체제를 해체했다.
지주사 전환 선언으로 M&A 시장에서는 앞으로 우리은행의 행보를 눈여겨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이 지주사 상장 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이 우선 과제이니만큼 인수합병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는 아직 없다”며 “지주사 전환 시 투자 여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시장에서 주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우리은행, 지주사 ‘선봉장’에서 홀로 ‘비금융지주’로 우리은행은 1899년 민족은행인 대한천일은행으로 출범했다. 설립 당시 고종황제가 창립자금을 지원하며 설립에 기여했다. 1911년 조선상업은행,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97년에는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잦은 상호 변경과 인수합병(M&A) 과정을 거친 우리은행의 역사는 다른 시중은행들과 비교해 우여곡절이 많은 것으로 비쳐진다. 2001년 3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금융지주사를 설립, 우리금융지주가 탄생했다.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부실 금융사들을 묶어 13조 원가량의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우리금융지주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우리금융지주는 2014년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계열사를 매각한 뒤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됐다. 우리금융지주는 효율적인 정부 지분 매각을 이유로 지주사가 해체됐으며, 당시 정부는 매각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시중은행이 모두 지주사 체제인 상황에서 유일하게 비금융지주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시장경쟁에서 불리하다고 판단, 지난 20일 지주사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금융당국 또한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우리은행은 지주사 해체 4년 만에 다시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다이내믹한 길을 걷게 됐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