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품절’되기 전 일단 ‘시늉’이라도…
▲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가운데, 어느 대기업이 입주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눈에 뒤덮인 충남 연기군 행복도시 공사 현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국내 대기업들 상당수가 세종시 입주 계획안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그간 입을 다물고 있던 대기업들도 막판 눈치 보기가 한창이다. 1차 세종시 입주 계획안에 참여하지 않은 대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다른 지역의 대규모 중장기 입주 계획이 잡혀있거나 이미 사업성 부분에서 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곳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 가자니 현 정권에서 사활을 건 추진 사업에서 제외된다는 부담감에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세종시 입주 계획에 대해 끝내 침묵하고 있는 재계서열 2위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우 대기업들의 세종시 입주 계획안이 발표되자 지난해부터 내부적으로 논의됐던 세종시 입주 관련 구상을 다시금 꺼내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세종시 입주 사업안을 담당하는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됐고 그간 모든 방안에 대한 검토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이 중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하이브리드와 전기자동차 관련 연구시설이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의 특성상 부품 등 생산시설이 따로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세종시 이전이 어렵다”며 “때문에 내부적으로 지난해부터 기존 연구소를 이전하는 방안, 혹은 새로운 연구소를 짓는 방안이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논의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세종시 입주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세종시에 입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업안에 대한 논의는 마쳤지만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들에 부딪혀 확실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대차가 2015년까지 투자수요가 남아있는 제철사업, 국외에 짓고 있는 생산시설 등 굵직한 투자 사업이 산적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때문에 세종시 입주는 아직까지 ‘메리트’를 갖지 못하다는 의견에 부딪히고 있다.
또 현대차 내부적으로도 연구소를 새롭게 세종시에 짓거나 현재 운영하고 있는 남양연구소를 이전하는 문제가 그다지 긍정적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의 현대차 관계자는 “울산 쪽에 있던 연구소의 필요성을 따져서 남양연구소와 통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새로 만들 필요성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때문에 현대차 측에서는 아직까지 확실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논의만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종시 입주안 발표 후 모든 결정권을 지닌 정몽구 회장은 “다시 한 번 검토를 해보자”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LG그룹은 당초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이전과 달리 최근 적극적으로 세종시 입주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2일에는 구본무 회장이 세종시 수정안 내용을 보고받은 직후 임원들에게 “빨리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계열사별로 입주 가능한 아이템을 그룹 차원에서 취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LG 측에서 특정 사업 분야를 정해놓고 입주를 추진하는 것은 아니며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는 정도로만 전해지고 있다.
다만 그간 재계 일각에서 꾸준히 세종시 입주 예정 계열사로 거론돼왔던 LG전자 관련 시설물은 우선 배제된 모양새다. LG그룹 내부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단계라고 하더라도 LG전자는 세종시 입주 대상자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며 “그룹 차원에서도 대규모 시설 입주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만큼 LG전자가 입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CJ도 세종시 입주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J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분석한 결과 입주 조건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라며 “현재 어떤 사업을 벌일 수 있을지 적극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갔고 이르면 이달 내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J 측은 공식적으로 “현재 내부적으로 복합생명단지, 보성과 논산에 위치한 식품단지를 엮어 복합식품단지를 짓는 방안, 지방에 산적해 있는 콜센터 통합단지를 세우는 방안, 물류기지를 세우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이디어 단계일 뿐 구체화된 상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계 3위의 SK그룹은 당초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이전을 놓고 타당성 검토를 벌이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SK 관계자는 “전혀 논의된 적도 없고 지금도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녹색산업을 겨냥해 세종시 입주 문제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외부에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내부적으로는 활발하게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국내 10대 기업 중 현대중공업 GS 한진의 경우 특별한 입주계획을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금호와 두산의 경우는 현재 워크아웃, 구조조정 등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인해 세종시 입주 검토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각 기업들의 이런 일련의 타당성 검토 작업을 떠나서 뒤늦게 합류를 검토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세종시 입주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세종시에 입주할 수 있는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세종시에 대기업이 입주하기로 예정된 첨단녹색산업용지 347만㎡(약 105만 평)의 부지 대부분은 삼성 웅진 롯데 한화그룹에 이미 1차 배정된 상태다. 때문에 현재 남은 땅은 50만㎡(15만 평) 정도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대기업이 세종시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 추가 투자는 힘든 상태며 연구소 등 소규모 시설 입주만 가능할 전망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