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조사단 출범 소식 후 국제 금융 브로커 찾는 한국인들 급증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범정부 차원의 해외범죄수익환수합동조사단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 은닉,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반사회행위이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적폐청산 일환으로 검찰이 하고 있는 부정부패 사건과 관련해서도 범죄수익 재산이 해외에 은닉돼있다면 반드시 찾아내어 모두 환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검찰 국세청 관세청 등 관련 기관이 모두 참여하는 합동조사단 설치를 지시했다.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의 대부분이 전문가 도움을 받아 교묘하게 이뤄질 뿐 아니라 추적이 쉽지 않은 만큼 어느 한 부처의 대응으로는 힘들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한 친문 의원은 “지난 정부들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몰라서 하지 않았겠느냐. 해외 비자금은 정부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전방위적 지원을 하지 않으면 추적하기 어렵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부처 칸막이를 없앤 합동조사단 설치를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며칠 뒤 검찰 국세청 관세청 3개 기관 실무자들은 2차례 만나 조사단의 운영을 놓고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단엔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금융감독원도 합류할 것으로 전해졌다. 자금 세탁이 의심되는 해외 송금 거래 내역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 모든 과정을 청와대가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문 대통령 역시 이 사안에 대해서 관련 참모들에게 자주 문의를 한다고 한다.
일단 조사단의 최우선 타깃은 문 대통령이 적폐청산 일환이라고 언급했던 부정부패 관련 해외 범죄수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 추적이 본격화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검찰과 국세청 등은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의 해외 재산을 추적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실소유로 추정되는 다스를 통해 해외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혐의를 받았다.
정권 출범 후 두 전직 대통령 해외 재산에 대해 확인 작업이 이뤄졌지만 성과를 거두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선 둘의 은닉된 재산을 찾아내 환수하는 게 적폐청산 완성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해외 비자금을 찾기 위해 복수의 사정기관이 경쟁적으로 나섰었다. 일부 정황을 잡긴 했지만 구체적인 자금 흐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MB의 경우 관련 제보들이 여럿 접수된 수준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재계에서도 긴장감이 감지된다. 그동안 도마에 올랐던 재벌들의 해외 재산 도피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진 까닭에서다. 앞서의 사정당국 인사는 “대통령 지시로 탄생한 합동조사단으로선 일단 실적부터 내야 한다. 재벌들이 차명계좌와 부동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공연하게 해외로 돈을 빼돌린 자료는 어느 정도 축적돼 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수사선상에 오를 것”이라면서 “이미 몇 군데의 재벌들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고 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해외에 은닉된 불법 재산에 대한 추적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홍콩 등 일부 국가에선 이를 대비하는 듯한 움직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 송금된 이후 조세회피지역으로 들어간 거액의 돈이 홍콩 소재 다국적 투자회사로 입금되는가 하면, 또 다른 투자회사로 옮겨가는 사례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자금 세탁을 전문적으로 하는 국제 금융 브로커들 사이에선 최근 한국인 고객 유치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홍콩에서 거주하는 중국인 브로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어도 내가 담당하는 회사에서만 한국인 소유 돈이 수천억 원 이상 들어오거나 인출됐다. 다른 곳까지 합하면 조 단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보관 중인 돈을 다시 홍콩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조세회피지역에서 들어온 돈도 꽤 된다. 또 다른 투자회사로 보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통상 자금 경로를 복잡하게 해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한 용도다. 떳떳한 돈이면 우리에게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수료가 적지 않은데도 왜 우리에게 맡기겠느냐 100% 검은돈이라고 보면 된다.”
국제 브로커들 주 고객이 재벌가 일원이거나 대기업 고위 임원들, 전문직 종사자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의 합동조사단 출범 소식이 이런 수상한 자금 이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중국계 다국적 투자회사의 한 임원 역시 “한국인들로부터 갑자기 의뢰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도 있다. 정부의 압박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뿐 아니라 몇 군데 회사가 은밀히 한국인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또 먼저 우리를 찾는 이들도 급증했다”고 말했다.
국제 브로커들은 합동조사단이 출범하더라도 자금 추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앞서의 중국계 투자회사 임원도 “일단 우리 회사로 돈이 입금되면 대한민국 수사기관의 추적은 불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앞서의 중국인 브로커와 자주 거래를 한다는 국내의 한 사업가도 합동조사단이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는 “소위 ‘선수’들의 손을 거친 돈이라면 절대 걸리지 않는다. 국내 수사기관들이 공조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면서 “돈은 정부보다 빨리 움직인다. 따라서 돈이 흐르는 길목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