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배 거론은 더 센 인물에 보낸 압박 메시지”…특검서 터트릴 수도
국회 본회의 모습. 박은숙 기자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었던 이른바 ‘드루킹 특검법’이 지난 5월 21일 통과됐다. 역대 13번째이자 문재인 정부 첫 번째 특검이다. 특검 구성 등을 감안하면 6월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수사가 예상된다. 야당은 특검을 통해 김 씨와 여권 실세들 간 커넥션, 대선 댓글 조작 의혹, 경찰의 부실 수사 등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특검이 ‘살아 있는 권력’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지 회의적 시선도 감지된다.
# 김경수 송인배 이어 누구? 드루킹 입 열까
구속 수감 중인 김 씨는 5월 18일 경찰 조사에서 “2016년 6월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소개로 김경수 전 의원을 만났다”고 진술했다. 여권은 발칵 뒤집혔다. 한 친문 의원은 “뉴스에서 김경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라고 했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인물이 거론되자 이슈에서 밀려나 있던 드루킹 사건은 단숨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김 씨의 진술에 정치권이 요동쳤던 셈이다.
김 씨가 특검법 통과가 임박한 상황에서 송 비서관 이름을 거론한 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김 씨와 가깝게 지낸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관계자는 “김 씨의 전략이다. 자신이 입을 열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여권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이다. 딜을 하기 위한 압박용 아니겠느냐”라면서 “김경수 송인배보다 더 센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경공모 내에선 김 씨를 비롯한 소속 회원들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는 듯한 여권 인사들의 행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독방에서 수감 중인 김 씨는 변호인 외 접견과 서신교환이 금지된 상태다. 하지만 여러 채널을 통해 검·경 수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전했다.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 씨의 한 지인은 “김경수 전 의원이 모든 의혹을 부인한 채 도지사 출마를 강행하는 것을 보고 (김 씨가) 크게 분노했다고 들었다. 경찰 수사에서 아무리 말해 봐도 소용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대신 김 씨는 특검법이 통과되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권 주변에선 김 씨가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을 폭로할 것이 점쳐졌는데, 실제로 김 씨는 지인들에게 ‘김경수 전 의원 주장을 단번에 깰 자료가 있다. 지방선거 전에 특검수사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한다. 또 김 씨는 자신과 관련이 있는 여권 실세들 이름을 추가 공개할 용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여의도에는 ‘드루킹 리스트’로 통하는 여권 인사 실명이 오르내린다. 김 씨는 김 전 의원과 송 비서관뿐 아니라 이들과의 만남, 돈 거래 등을 정리해 둔 자료를 모처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 대선으로 불똥튈 수도
드루킹 일당이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일요신문’ 1354호 정치권 온라인 여론조작 실태 기사 참고). 특히 인터넷상에서 유독 강세를 보였던 친문 세력의 지지자들 중 몇몇이 매크로 등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여론 조작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드루킹 사건을 통해 그 실체가 일부 드러난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지난해 대선 때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도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캠프 측이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댓글 의혹으로 임기 내내 시달렸다. 그만큼 내상이 컸다는 얘기”라면서 “친문 쪽이 예전부터 온라인 댓글로 장난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었는데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캠프 관계자들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한 친문 의원은 “지지자들 중에서 그런 일을 자발적으로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캠프 차원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캠프에서 SNS 관련 업무를 맡았던 관계자 역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캠프 인사들 중 누가 그런 일을 용인하겠느냐. 온라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문 대통령 지지가 워낙 높다 보니 그런 오해를 받았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권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친문 인사들 중 누군가가 드루킹 일당을 비롯한 일부 지지자들의 댓글 조작 활동에 대해 알고 있었거나 또는 보고를 받았다면 ‘개인 차원의 범죄’로 끊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김 씨가 대선 때 역할에 대한 대가로 인사 청탁을 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면서 “캠프와 조금의 연관성이라도 나온다면 사조직을 동원해 댓글을 조작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때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급등하며 문 대통령과 박빙을 이루자 인터넷상에선 안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진 바 있다. 김 씨가 ‘안철수=MB 아바타’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문재인 캠프 일각에선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됐었다. 비정상적으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선거 분위기 탓에 크게 주목받진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청와대 해명 석연찮아
현 정권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청와대는 5월 21일 송인배 비서관에 대한 민정수석실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송 비서관이 4월 16일 먼저 김 씨와의 관계를 얘기했고, 이에 민정수석실이 20일과 26일 두 차례 조사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송 비서관이 과거 김 씨와 네 차례 만났고, 2016년엔 100만 원씩 두 번 총 200만 원의 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러한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또 한 달이 훌쩍 넘어서야 언론에 뒤늦게 공개했다. 통과가 거의 확실시됐던 특검 표결을 하루 앞두고 있던 때라 마지못해 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청와대는 “(송 비서관 건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200만 원은 간담회 사례비 명목으로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조차 청와대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기류가 강하다. 정국을 뒤흔든 사건에 청와대 핵심 참모 이름이 거론됐는데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문고리 권력 눈치 보기라는 지적이 뒤를 잇는다. 또 통상적이라고 했던 200만 원에 대해서도 정치권 관계자들은 “요즘 세상에 누가 정치인에게 그렇게 돈을 주고 그러나. 전혀 통상적이지 않다. 통상적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철성 경찰청장의 발언은 세간의 의혹을 더욱 부추겼다. 이 청장은 5월 21일 송 비서관과 김 씨의 접촉에 대해 “사전에 몰랐다”고 했다. 진짜 몰랐다면 부실수사고, 만약 알고도 조사하지 않았다면 봐주기 수사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후자 쪽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청와대와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경찰청 간 ‘핫라인’이 가동돼 이철성 청장이 몰랐을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와대가 경찰 측에 어떤 식으로든 알렸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에서 먼저 송 비서관 이름이 나오면 얼마나 곤혹스럽겠느냐. 송 비서관 건에 대해 민정수석실이 자체적으로 ‘문제없음’ 결론을 내렸다는 것은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설령 경찰이 송 비서관과 김 씨의 관계를 인지했더라도 수사를 진행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청와대가 말을 해주지 않아 경찰이 정말 몰랐다고 해도 수사를 꼼꼼히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특검 누가 맡을까? 실세 수사 부담에 상당수 고사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향후 특검을 누가 맡을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대한변호사협회에 꾸려진 특검후보자추천위원회가 4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야3당 교섭단체가 이 중 2명을 추린다. 이 중 한 명을 문 대통령이 특검으로 임명한다. 수사팀은 특검을 필두로 특검보 3명과 파견검사 13명, 특별수사관 35명, 파견공무원 35명 등을 더해 최대 87명 규모로 꾸려진다. 준비 기간 20일을 포함한 60일 동안 수사할 수 있고 필요시 30일 연장이 가능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11명의 추천위원 명단도 철저하게 비공개다. 대한변협은 지금까지 30명가량의 특검 후보자를 추천받았고, 이들에게 참여 의향을 물어보는 단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6월 4일 추천위원회를 열어 4명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사건 특성상 IT 쪽 수사에 경험이 많은 후보자가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사법연수원 14기),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17기),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17기),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17기), 강찬우 전 대검 반부패부장(18기), 오세인 전 광주고검장(18기), 김해수 전 대검 강력부장(18기) 등이 추천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로 검찰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인사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해 추천 후보자들 상당수가 고사의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거론된 검찰 출신 변호사들 중 한 명은 “욕심이 나긴 했지만 너무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 한창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권 실세들을 수사해야 하는 건이다. 수사를 못 하면 욕을 먹겠지만 잘 해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박영수 특검처럼 국민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또 그런 상황도 아니지 않느냐.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추천 후보자로 올랐지만 고사했다는 한 변호사는 “특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 중 하나는 수사기관에서 인력과 자료를 얼마나 협조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번 특검은 그런 것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