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 때문에 선거 망할 판” 후보자들 울상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한국당) 후보들이 홍준표 대표와 선 긋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31일 홍 대표는 부산 지역 지원유세를 갔지만 정작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간 서 후보는 부산 내 다른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5월 31일 대국민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에게 문재인 정권을 견제할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박은숙 기자
서 후보는 이날 홍 대표와 동선을 다르게 짜면서 일부러 피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서 후보는 지난 5월 21일 홍 대표가 부산을 찾았을 때도 범어사 주지 스님 간담회만 함께했을 뿐 계속 따로 움직였다. 일반적으로는 당 대표가 지원유세를 오면 후보자와 함께 움직인다.
서 후보는 지난해 “홍 대표 대신 젊은 인물로 당 얼굴을 바꿔야 한다”면서 공개적으로 홍 대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 5월 30일 홍 대표가 주재한 충남 선대위 회의에도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가 나타나지 않아 뒷말이 무성했다. 당내에서는 “후보들이 대놓고 ‘홍준표 패싱’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남경필 한국당 경기도지사 후보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홍 대표가 지원유세를 오면 받을 것’이냐는 질문에 ‘노코멘트’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박성효 한국당 대전시장 후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홍 대표를 저격했다. 박 후보는 “홍 대표가 선거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걸리적거리지는 말아야 한다”면서 “충청도 민심은 ‘홍준표 미워서 한국당 못 찍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이외에도 이번 선거에 나선 한국당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대부분 홍 대표와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는 지난 4월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서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몰상식한 발언이 당을 더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당 지도부는 정신 차려야 한다”고 했다.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는 “날 찍고 싶어도 당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한 한국당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는 “우리 지역은 정치 색깔이 딱 구분되어 있지 않아 여야가 번갈아 가며 당선되는 곳이다. 민심에 민감한 지역인데 같은 당원들조차도 홍 대표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면서 “바닥에서는 후보들이 당을 살리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홍 대표가 쉽게 한마디 내뱉는 발언 때문에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된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지원유세를 온다면 받겠느냐는 질문에는 “후보자와 직접 상의해본 적은 없지만 캠프 내 분위기는 ‘제발 안 오셨으면 고맙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홍 대표의 지원유세는 오히려 경쟁 정당 인사들이 바라고 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는 5월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홍준표 대표님이 한번만 더 지원유세 와주시면 저는 (당선)될 것 같다”고 적었다. 이 후보는 “홍 대표님 덕에 요즘 지역에서 힘 많이 얻고 있다”고도 했다.
당내에선 홍 대표가 막말 이미지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요지부동이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당내에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봤지만 홍 대표가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홍 대표 부인인) 이순삼 여사에게도 말씀드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3월 김성태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홍 대표의 막말 이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 ‘우리 준표가 달라졌어요’ 프로젝트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나 홍 대표의 거부로 무산됐다. 홍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런 코미디 같은 쇼는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나 하는 것”이라며 “내가 (김 원내대표를) 야단쳤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이미지를 바꾸라는 요구를 자꾸 정치 쇼라고 하는데 그게 왜 정치 쇼인가. 가뭄이 들면 반찬 수를 줄였던 조선시대 임금들도 정치 쇼를 한 것인가. 국민들은 그런 것에 감동한다”면서 “당 대표는 당을 위해서라면 벌거벗고 춤이라도 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본인이 낯부끄럽다고 그런 노력을 못하겠다고 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과거 선거를 치러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와서 지원 유세를 해주면 밑바닥 민심이 뒤집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면서 “후보들이 자기 지역도 지원 유세를 와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반면 후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리적거리지나 말라는 말을 듣는 홍 대표는 정말 반성해야 된다”고 말했다.
홍 대표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지방선거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정우택 의원은 5월 29일 당 지도부를 향해 “끝없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당 지지율과 선거전략 부재의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의 자세로 헌신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의 발언은 홍 대표의 당 선거대책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 의원은 “우리 당 후보들이 선거에 대한 도움은커녕 지원유세도 기피하고 있는 것은 극도로 악화된 민심의 반영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지역에서 홍 대표의 지원유세를 꺼리는 분위기를 지적한 것이다.
당 안팎에서 홍 대표를 향한 비판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지만 친홍(친홍준표) 진영에선 차기 당권 선점을 위한 명분 쌓기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친홍계로 분류되는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정 의원의 주장에 대해 “선거가 보름 남짓 남은 시점에 지도부 사퇴를 주장하는 이유는 차기 당권 선점을 위한 명분 쌓기”라며 “참 얄팍하고 속 보인다. 어린아이처럼 철없는 당권 욕심이 당원들과 후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 측 관계자는 후보자들이 홍 대표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효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서로 협의를 해서 광역후보는 광역후보대로 당 대표는 당 대표대로 움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성효 후보나 남경필 후보가 공개적으로 홍 대표의 지원유세를 받고 싶지 않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일정을 한번 봐 달라. 두 후보도 결국 홍 대표의 지원유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가 이미지 변신을 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앞으로 상황과 타이밍에 맞게 판단해서 잘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