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확실히 시대정신이란 것이 있다. 지난 시대에는 부와 권력이 짝이었는데 이제는 부와 권력을 동시에 취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선거과정에서도 극명하게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시대의 영웅으로서 지난 1년간 누구보다도 짱짱한 인기를 누려온 이명박 후보가 끝까지 웃게 될까.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토론은 토론이라기보다 혈전이었다. 하긴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가 되는 싸움을 놓고 누군들 치열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생각해 보면 자연스런 현상인데 모양이 좋은 건 아니다. 누가 저 아수라장을 통과해 후보가 될 것인가. 과연 70~80년대 개발성장시대에 신화를 만들었던 이 후보가 21세기 지식 창조시대에도 신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개발성장시대에는 권력과 부가 서로서로 사랑했다. 신화 같은 부는 정경유착의 구조 안에서 축적이 됐다. 그렇게 천문학적인 부가 축적되면 부는 권력에 은혜를 갚아야 했다. 모두가 가난해서 “잘 살아보자”고 허리끈을 조여 맸던 그 시대는 열정적이었고 그만큼 역동적이었다. 당연히 살아있는 채로 신화가 된 영웅들이 탄생했다. 선악이나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했던 영웅들이. 법질서조차도 그들을 보호해서 판결문에 단골처럼 등장했던 구태의연한 말은 바로 “국민경제에 이바지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김승연 회장 판결의 의미는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체제에 속하는 법원에서도 그 시대를 종식시키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똑똑해지고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중요해진 이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과정’이다. 당신이 회장이면 회사 의사결정 과정에서나 회장이지 누구를 함부로 구타해도 되느냐는 항의에 힘이 실리고, 지난 시대의 영웅이더라도 새 시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새 시대의 조건에 부합하는 도덕적 요구까지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권력은 권력이 사랑하는 이에게 부를 축적하게 도와주는 권력이 아니다. 새 시대의 권력은 공정성 여부를 놓고 끊임없이 감시당해야 하는 권력이다. 이 땅 한반도에도 부당한 부가 함정 중의 함정인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이 아닌 이 땅 최고 권력자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인식이 아닐지. 지금 동북아 역학구도 속에서 한반도는 지각변동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것이 냉전이었다. 유럽은 동서독이 통일되고 EU로 통합되면서 지각변동기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만든 마지막 분단국가 한반도는 아직도 불안하다. 이 불안한 시대를 이끌어갈 대통령은 분단국가로서의 고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 문제를 우리의 시각에서 풀어낼 수 있는 정치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능력, 이 시대 우리 대통령에게는 꼭 필요한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