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삭제했던 사진 원상복구…“시위행위 뒤늦게 인지, 규정 변함 없어”
6월 2일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 코리아 사옥 앞.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여성 10명의 몸에 글자가 적혀있다.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의 상의 탈의 사진을 임의로 삭제한 페이스북의 조치는 여성혐오에 해당한다”고 규탄했다. 이날 진행된 기자회견은 한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순위 1위까지 차지하며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다.
6월 2일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성차별적 규정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상의탈의 시위는 지난달 불꽃페미액션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페이스북이 임의로 삭제하면서 시작됐다.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은 5월 26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진행된 ‘월경 페스티벌’에서 다 같이 가슴을 드러낸 사진을 찍었다. 운동장에서 상의 탈의한 남성을 쉽게 볼 수 있듯 남성의 나체는 ‘보편 인간의 몸’으로 인식되는 반면 여성의 나체는 음란물로 여겨지는 데 항거하는 의미를 담은 것. 하지만 해당 사진은 게시 후 5분이 채 되지 않아 임의로 삭제되었고 불꽃페미액션은 이에 항거하는 의미로 6월 2일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불꽃페미액션은 관계자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일정 기간 정지당했다”며 “여태껏 남성의 상의 탈의 사진은 음란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서 여성의 몸만, 특히 페미니즘적 의견을 담은 주체적 상의탈의 사진을 삭제한 페이스북에 항의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말했다.
상의 탈의 시위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시작 전부터 논쟁이 일었다. 상의 탈의를 진행할 경우 ‘공연음란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 것. 실제로 시위 당일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상의를 탈의하자 먼저 와 대기하던 경찰이 즉시 이불로 몸을 가렸고 이들은 “가리지 말라” “억압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저항했다. 마찰이 계속되며 퍼포먼스는 10여 분 만에 종료될 수밖에 없었다. 시위에 참가했던 한 회원은 “(경찰의 행동을 보고) 공영방송에서는 남자들이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많이 나오는 데 얼마나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많은지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불꽃페미액션의 관계자는 “공연음란죄는 공연하게 성욕의 만족과 흥분을 목적으로 하는 음란한 행위를 할 때 지어지는 죄다. 우리는 성욕을 만족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이용하여 성욕을 만족하게 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저항하고 여성도 동등한 인간임을 드러내기 위해 가슴을 드러낸 것”이라며 “외부로부터 경찰 측에서 우리의 퍼포먼스가 공연음란죄도, 경범죄도 해당하지 않음을 이야기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시위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시위를 직접 봤다는 한 남성은 “시위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남성들도 거리에서 상의를 탈의하지는 않는다”며 “만약 상의를 탈의하지 않고 그러한 구호를 외쳤다면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 여성은 “여성의 상의탈의가 익숙지 않아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여성의 가슴 사진만 삭제되는 건 문제가 있는 게 맞다”며 “그들이 상의를 탈의했기 때문에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그들의 구호에 페이스북도 반응했다. 삭제했던 가슴 노출 사진을 원상 복구한 것. 이를 두고 텀블러,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 비해 그동안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 온 페이스북이 이례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페이스북코리아는 사진을 복구한 것은 맞지만 운영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실제로 여전히 페이스북의 커뮤니티 규정에는 ‘가려지지 않은 여성의 유두’는 게시하면 안되는 나체 성인 이미지로 분류되어 있지만 남성에 대한 동일한 규정은 없다. 페이스북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사진에 시위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해 사진을 삭제했었다. 시위 행위 묘사, 모유 수유 등 특정한 경우 가슴 노출 사진을 허용하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규정에 따라 사진을 복구한 것”이라며 “페이스북 규정은 어느 나라나 동일하게 적용되기에 해당 시위로 인해 변한 부분은 없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건 아직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정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상의 탈의 시위를 사회에서 강요하는 미의 기준에 억압당하지 않겠다는 ‘탈 코르셋 운동’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브래지어’는 많은 여성이 불편함을 느낌에도 외부의 시선과 스스로의 부끄러움 때문에 착용하는 대표적인 코르셋으로 꼽힌다. 불꽃페미액션 한 회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그저 여성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라 몸일 뿐이라고, 상의 탈의할 자유에 대해 말하려 한건데 많은 분이 탈 코르셋이라고 박수쳐 주셔서 조금 어색하다”며 “하지만 누군가에게 강요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상의 탈의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시선의 구속을 내던진다···2030 여성 ‘탈 코르셋’ 열풍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제모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누구도 강요하지는 않지만 제모하지 않는 여성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 놀라운 점은 1915년 미국에서 여성용 면도기가 처음 출시되기 전 제모하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광고는 자연스러운 체모를 제거해야 할 흉측한 대상으로 묘사했고 어느덧 매끈한 다리와 겨드랑이는 여성이라면 갖추어야 할 아름다움의 조건이 됐다. 남성 역시 제모하지 않은 다리 때문에 불쾌한 소리를 듣는 경우가 없지 않다. 모두 미디어에 의해 씌어진 ‘외모 코르셋’이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탈 코르셋’ 열풍이 불고 있다. 탈 코르셋이란 보정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겠다는 사회운동이다. 주로 사회에서 강요하는 화장, 제모 등의 ‘꾸밈노동’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로 쓰인다. SNS에는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거나 화장품을 뭉개버리는 사진과 함께 탈코르셋을 인증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6월 2일, 1만 4000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 뷰티 유튜버는 영상을 통해 ‘더는 뷰티 영상을 찍지 않겠다’며 탈 코르셋을 선언하기도 했다. 탈 코르셋 운동이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까닭은 아직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을 죄는 외모 코르셋이 강력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탈 코르셋에 도전했다는 20대 여성은 “늘 긴 머리는 불편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했는데 아마도 ‘여성은 머리는 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숏컷을 하자’는 생각이 컸다”면서 “외출 전 화장을 하는 내 모습이 언제인가부터 인형같이 느껴져서 최근에는 화장 대신 선크림만 바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탈 코르셋을 두고 여성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적지 않다. 꾸밈은 자기만족이기 때문에 코르셋이 아니라는 입장과 함께 결국은 사회적으로 정해진 암묵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 71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한 패션&뷰티 유튜버는 얼마 전 페미니즘 영상을 올렸다가 결국 영상을 삭제했다. 사회가 정한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해 전파하는 뷰티 유튜버가 페미니즘 발언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것. 하지만 이를 두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탈 코르셋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목소리가 맞서며 논란이 일었다. 앞의 20대 여성은 “여성들끼리의 분쟁이 있다는 점이 속상하기도 하지만 코르셋이 개인의 자기만족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공들여 화장하고 밖에 나가서도 화장이 무너졌나 계속 확인하는 것, 짧은 치마를 입고 온종일 불편해하는 것이 과연 자기만족이 될 수 있나. 결국, 자신을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서 꾸민 것이고 그건 코르셋으로부터 비롯된 자기만족”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탈 코르셋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는 ‘상징’ 그 자체가 다는 아니라는 얘기다. 또 탈 코르셋을 둘러싼 ‘진짜 페미’와 ‘가짜 페미’의 소모적인 논쟁 대신 페미니즘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단체의 한 회원은 “화장과 긴 머리 등은 여성들에게도 선택과 유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는 꾸미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에 그에 저항하는 흐름이 있지만, 꾸미기 그 자체는 자신의 미적 기준을 만족하게 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어떤 형태이든 탈 코르셋을 시작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내가 편한 것, 내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