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대 교수 권영준 | ||
올 연말이면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대망의 2만 달러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2만 달러는 그림의 떡일 뿐 아니라 도무지 체감할 수 없는 숫자임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소득 양극화는 물론 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진행돼온 자산 양극화다. 소수의 부유층은 고소득 및 자산 재테크로 인해 GDP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나마 다니던 일자리도 쫓겨나고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앞으로 우리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모델은 무엇인가.
참여정부는 스웨덴 식의 사회민주주의 복지모델을 선호하는 것 같고 한나라당은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성장모델을 선호하는 것 같은데, 어떤 모델이 우리에게 더 맞을까. 우선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그대로 두고 복지와 분배의 강화를 통해 좀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개량주의로 방향을 틀었다는 점에서 중도적 위치의 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다. 사민주의 복지모델은 개인 소득의 상당부분을 정부가 세금으로 환수하여 그 돈으로 사회적 약자 계층들을 사회복지(의료, 노후보장, 교육 등) 차원에서 돕기 위해 대규모 복지성 재정지출을 집행하는 체제다. 때문에 고율의 세금이 부과되면 개인들의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가 대폭 줄어들어 근로의욕이 감퇴되거나 우수한 인적자원들의 대규모 해외유출이 발생되고 국가 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소위 파이 자체가 크게 줄어들면서 일자리가 축소하고 실업율이 팽창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반대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성장위주의 정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세계화 및 구조조정을 강요하여 결국 대규모실업과 불황,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초래함으로써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는 시장만능주의라는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양극단을 극복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각 정책의 장점을 통섭하는 정책조합(Policy Mix)인데, 그것이 이른바 공동체 자본주의인 것이다. 공동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장점인 시장지향적 경쟁의 방법을 그대로 활용하여 성장을 추구하되 그 성장의 목적이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에 두는 것이다.
경제체제의 목적이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점에서는 사민주의와 동일하나 공동체 자본주의 경우에는 공동체 발전의 정책수단이 정부의 강제적인 세금징수가 아니라 시장친화적인 투자와 자발적 나눔운동과 기부문화에 의존한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이 경우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라는 점은 신자유주의와 유사하나 약육강식의 천민자본주의가 아니라 나눔과 기부가 풍부한 따뜻한 시장경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또한 사회적 기업들의 역할이 크게 대두되고,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 방법에 의해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 및 질병퇴치에 시장이 직접 나서는 자발성과 사회적 풍토조성이 필수적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공동체 자본주의를 주도할 수 있는 도덕적 엘리트들의 고결한 의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올 대선을 통해 국민들은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