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대 교수 이주향 | ||
한반도에 말라리아라니. 기후가 심상찮다. 오죽하면 한 일간신문은 ‘여름 장마도 울고 갈 가을 장마’란 제목을 뽑았을까. 최근 열흘 동안 내린 비가 여름 장맛비의 2.5배를 웃돌았단다. 우연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심상찮은 변화일까.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대체로 한반도의 여름 장마는 분포가 넓고 길고 지리했다. 오죽하면 ‘지리한 장마 끝에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하는 한용운 시인의 문장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비 오는 방식도 현격하게 달라진 것이다. 게릴라성 집중 호우. 이 땅에서 그것은 낯선 것이었다. 세상에, 강북에선 비가 퍼붓듯 내리는데 한강 건너 강남에는 비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더 심한 것은 반포에는 비가 오는데 바로 옆 동네 사당에는 비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놀랐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비, 열대지방에서나 내린다던 게릴라성 집중호우를 온대지방이라는 이 땅에서 보게 될 줄 몰랐으므로.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비가 내리면 걱정은 돼도 놀라지는 않는다. 의외로 인간이란 새로운 상황에 쉽게 적응하는 존재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한 매력적인 ‘온대’를 잃은 것 같다. 어릴 적과 비교해 봐도 겨울이 참 따뜻해졌다. 무척이나 추위를 탔던 나는 겨울을 싫어했다. 겨울엔 잠이 많아지고 집밖으로 나가기를 싫어했다. 왜 곰과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는지 몸으로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겨울이 싫다고 노래를 부르면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추워야 매화향기도 짙고, 추운 겨울을 견디는 게 더운 여름을 견디는 보약인 거야.” 그땐 몰랐던 그 말, 그저 스쳐간 말이 문득문득 살아났다. 이번에 말라리아 얘기를 들었을 때도. 겨울이 따뜻해져 죽어야 할 것들이 죽지 못하니 여름에 말라리아까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우리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 겨울, 뉴욕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했었다. 겨울이 춥지 않아 반팔을 입고 산책을 다니는데 쾌적하긴 해도 무슨 징후인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자연스럽게 기후가 변화한 거라면 뭐 그리 문제겠는가. 문제는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다보스 포럼’의 2005년, 2006년의 중심 의제였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많은 부분 인재(人災)라는 것이었다. 기후변화 국제위원회는 기후변화의 90%가 인류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는 게 죄다. 내가 타는 자동차, 에어컨. 겨울엔 반팔, 여름엔 긴팔을 입도록 건물마다 빵빵해진 냉난방시설. 세계 4%의 인구를 가진 미국이 20% 이상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비판도 이젠 별 설득력이 없다. 우리도 만만찮게 에너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서운 속도로 경제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가 미국처럼 우리처럼 에너지 과소비 국가가 된다면?! 심각한데 대책이 없다. 이렇게 살다간 쓰나미처럼 닥쳐올 환경재앙을 고스란히 겪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