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해마다 국정 감사철이면 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위원회들이 도마위에 오른다. 그리고 국회에서 시끄러워지면 임무가 끝난 위원회는 해체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위원회는 해마다 늘어날 뿐 없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2005년에는 국무총리가 “설치목적이 달성됐다”며 폐지한 위원회를 5개월 만에 대통령이 새로 설치하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 폐지된 위원회는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였고 대통령이 새로 설치하라고 한 기구의 이름은 ‘물관리위원회’(가칭)였다.
굳이 파킨슨의 ‘기구배증(倍增)의 법칙’을 끌어대지 않더라도 한번 만들어진 기구가 정권의 ‘혁명적 결단’ 없이 폐지되는 일은 없다. 국민의정부가 끝날 무렵인 2002년 말, 정부 각 부처 산하 위원회는 모두 364개였다. 그러던 것이 참여정부 5년차인 지난 6월 말 현재 대통령 직속 28개, 국무총리 소속 52개 등 모두 416개에 이른다고 한다.
위원회 중에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행정기관의 성격을 가진 관청적 위원회만 해도 대통령 직속으로는 국가청렴위, 국민고충처리위 등 7개나 되고 총리실 소속도 금융감독위, 공정거래위 등 14개나 된다. 게다가 억대 연봉에다 판공비까지 지급되는 장관급 위원장이 40명이고 차관급 위원장도 96명에 이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개혁이니 혁신을 내세우는 정권일수록 위원회 만들기를 좋아하고 정권의 실세들을 위원장에 앉히기를 좋아했다. 말인즉슨 윗분의 뜻을 잘 받들어 부처 간의 벽을 허물고 통합적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기능과 역할이 위축된 곳은 각 중앙 행정기관 및 국무총리 소속 기관에 대한 지휘·감독과 정책의 조정 및 심사평가를 하는 국무조정실이었다.
행정조직의 피라미드 위에 다시 위원회를 얹어 옥상옥(屋上屋)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기존 관료조직에 대한 불신의 표시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새로운 위원회를 만드는 뒤켠에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해 온 무사안일한 기존 관료조직으로는 개혁이 안된다는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료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고 국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각종 위원회에 대한 전면적 수술이 필요하다. 한두 개 위원회를 손질하는 것으로는 그 많은 옥상옥을 철거할 수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어느 대선 예비주자들의 공약에도 위원회 정치의 폐단을 척결하여 일그러진 국가 행정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공약이 없다는 점이다. 지역개발공약처럼 당장의 득표에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