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대 교수 권영준 | ||
경제가 상식과 다르게 어려운 이유는 비경제원리가 경제원리를 뒤집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배추가 흉년이라서 김장비용이 서민들을 괴롭힐 모양이다. 흉년이면 농민들도 매우 어려울 것 같고 풍년이면 반대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경제현상이다. 흉년이면 개별농가들은 수확량이 떨어져서 어려울 것 같지만, 모든 농가가 동일하다면 전체수확량 급감으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여 오히려 농가소득은 늘어날 수가 있고, 풍년이면 전체 수확량이 급증해서 개별 농가가 수확량이 늘어도 가격 폭락으로 농가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한다. 정치적 논리나 정서적 논리로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인위적인 부작용과 함께 구성의 오류를 체험하게 되어 경제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난달에는 고등법원에서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던 2개 재벌 그룹 총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있었는데 이 또한 언제부터인지 판사들이 경제전문가가 되어서 판결문에 사법정의보다도 경제논리를 앞세우는 판결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는 경제논리라고 하지만 실상은 구성의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서 법조문 외우듯이 일부 언론이 광고주를 의식해서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답습한 것 같은 판결이다. 생각있는 경제전문가들은 법치주의가 무너진 나라경제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산을 이룬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비록 검찰이 기소한 내용과 유사하게 범죄를 저지른 것이 사실이지만 판사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 한국경제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총수를 구속하는 것은 현대차의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그 대신 말 같지도 않은 ‘원고게재와 강연’이라는 해괴한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또한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경우 빗나간 자식사랑으로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역시 그룹경영의 정상화를 위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는 것이다.
이들 재벌 총수들은 하나같이 재판을 받을 때는 혼자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병약해져서 휠체어를 타지만 집행유예의 판결이 선고되면 강력한 체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해외출장이다 남북정상회담 동행이다 하며 고단한 일정들을 강행하고 있으니, 국민들 눈과 판사들 눈 사이에는 어쩌면 이렇게 편차가 큰 것일까.
외환위기 직후에 우리는 수 십 조원의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여했던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 많던 회사들이 총수 김우중 씨가 그룹으로부터 완전히 손떼고 난 후에 오히려 더 투명해지고 경쟁력이 막강해져서 탄탄한 회사로 거듭난 것을 알고 있다. 총수가 존재하면 그룹이 더 경쟁력 있고 없으면 망할 것 같지만 그 반대인 경우가 국제적으로는 물론 국내에서도 검증되고 있는 구성의 오류다. 소위 법치제도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 판사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