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이제 우리나라도 실질적인 사형폐지국가가 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우리에겐 사형제도가 있다. 그러나 10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으면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인정되는데 우리도 그 요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신은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예 사형제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합법적으로라도 누군가의 목숨을 끊는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는 죽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목숨은 하늘이 주는 거라 믿고 있고, 하늘이 거두어 가실 때까지 누구든 하늘 아래서 자연스럽게 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아마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것 같다. 이 세상에 흉악범이 발붙일 자리는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법가적 사유방식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현실은 이상하게도 그 논리의 허점을 자주 드러낸다. 미국은 주에 따라 사형제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런데 사형제도가 있는 주가 없는 주보다 흉악범의 비율이 높다. 또한 사형제도를 유지했다가 폐지한 국가들을 보더라도 오히려 폐지 이후 흉악범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는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사형제도로 흉악범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오판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사형이 집행된 이후 진범이 잡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랬을 땐 잘못된 자료를 근거로 사형을 집행토록 한 판사는 참회할 기회도 잃은 남은 생을 또 어찌 보낼지.
사형폐지는 세계적인 추세다. EU는 아예 사형폐지국가가 되어야만 가입할 수 있다. 이미 세계 131개 국가가 법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했거나,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사형폐지 국가로 인정되었다.
지난 10일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기념하면서 실제로 사형언도를 받은 적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예를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혁당 사건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얼마나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지 생생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지고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이제 와서 누가 그들의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역시 1980년 신군부에 의해서 사형언도가 내려지고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저는 국민의 힘과 세계여론의 저항에 의해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04년 과거 저의 사형을 확정했던 바로 그 대법원에서 다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저는 불행 중에도 이러한 행운을 얻은 사람이지만….”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사형제도가 폐지된다고 흉악범이 거리를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격리된다. 그 격리를 통해 사회는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은 스스로 정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