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이 작은 일은 언뜻 보기보다 큰 뜻을 지녔다. 건륭제의 옥새는 1900년 ‘의화단의 난’ 때 출정한 프랑스 군의 지휘관이 청의 궁전에서 약탈해갔다. 청 황제의 직위를 상징했던 옥새를 사들임으로써, 중국 사람들은 서양 강국들의 침입을 받아 수도 북경이 함락되고 문화재들이 약탈당했던 어두운 역사의 자취를 조금이나마 지운 셈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중국 경제의 경이적 성장이다. 그리고 중국의 발전은 잘 알려진 대로 1970년대 이래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채택한 덕분이다. 특히 시장경제를 지향한 ‘개혁·개방정책’은 사회 발전의 튼튼한 바탕이 되었다.
원래 해외로 나간 중국 문화재들은 외국인들이 약탈해간 것들보다 중국 사람들이 도굴해서 팔아 넘긴 것들이 훨씬 많다. 그런 도굴과 밀반출은 가난과 혼란이 극심했던 20세기 초 특히 많았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의 해악을 선명하게 본다. 먹고 살기 힘들면 선조들의 문화적 유산들을 지킬 수 없다. 도굴해서 찾아낸 유물들을 외국 사람들에게 넘겨서라도 생존해야 한다. 사회가 풍요로워지면 누가 일깨워주지 않아도 문화적 유산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들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을 품게 된다. 마침내 그것들을 큰돈을 들여 되사들이는 사람들이 나온다.
문화재가 꼭 국내에 있어야 할 까닭은 없지만 후손들로선 유물들이 밖으로 나돌면 선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된다. 문화재를 굳이 되찾겠다고 나서는 일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사람답게 산다는 증거다.
이런 소식은 지금 북한 문화재들이 많이 해외로 밀반출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 주민들이 워낙 가난하니 도굴과 밀반출이 성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국과 북한의 대조적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중국과 북한은 비슷한 시기에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압제적 체제 속에서 주민들이 괴로움을 받은 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숙청되고 어리석은 정책으로 굶어죽은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중국은 한 세대 전에 개혁·개방정책을 골랐다. 그 뒤로 중국은 빠르게 발전했고, 아직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지만 시민들의 삶은 크게 나아졌다. 세계에서 가장 어둡고 가난하고 압제적인 북한에선 몇 백만 명이 굶어죽었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잇따른다.
북한과의 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핵무기를 빼놓으면 주민들의 인권이다. 그러나 인권이란 말로는 북한 주민들이 잃은 것들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 문화적 유산을 도굴해서 연명하는 사람들의 삶과 해외로 나간 유산들을 되사들이는 사람들의 삶 사이에 있는 차이는 그 말에 담기지 않는다.
이번에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북한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들의 유화정책과 관련해 늘 앞세웠던 ‘개혁·개방’이란 말을 서둘러 지웠다. 북한 정치 지도자가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아직 도굴자 수준인 북한 주민들의 삶과 문화재들을 되사들이는 중국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다른가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을 외면하고서 외치는 평화와 통일은 얼마나 큰 뜻을 지닐 수 있을까. 어느 세월이면 북한에도 해외로 나간 문화재들을 되사들이겠다는 사람들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