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참여정부 출범 이래 부산 출신들을 요직에 중용하는가 하면 신항 건설이다, 북항 재개발이다, APEC정상회담 개최 등 그동안 하느라고 했는데도 부산민심이 쉽게 돌아서지 않으니 야속한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이 발언은 아직도 지역주의에 매달리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을 하루아침에 부산의 지역 대통령으로 격하시킨 셈이 되고 말았다.
얼마전에는 민주당 이인제 대통령후보가 대전에서 “지역패권이 충돌하는 시대에 충청은 정치적으로 소외됐다”며 자신이 “최초의 충청 대통령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자 이인제 후보는 한 방송토론회에 나와 “내가 충청도 출신이니까 이제 충청도 출신도 대통령으로 뽑아 달라고 애교있게 말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정권이니 충청 대통령이니 하는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우리 정치에 드리웠던 지역주의라는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 이래 우리의 대통령 선거는 언제나 지역주의라는 망령에 휘둘려 왔다. 그러다보니 대통령 후보의 본적지를 따지는 것은 물론 정권획득에 성공한 뒤에도 요직인사는 으레 TK니 PK니 또는 호남편중이니 하는 편파인사 시비가 뒤따르곤 했다.
우리 정치가 이 같은 지역주의에 오염된 것은 팔이 안으로 굽듯 인물 됨됨이나 정치적 경륜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제 고장 출신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유권자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지역정서를 자극하며 특정지역에 영합하는 선심공약을 쏟아낸 정치인들에게 있다.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는 잡초 우거진 국가공단이나 이용객이 거의 없는 지방 국제공항 등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남발한 지역공약이 남긴 흉터들이다.
지역성 선심공약을 남발하는 대통령 후보를 볼 때마다 우리가 선거에서 뽑을 인물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도지사나 도의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팎에 꼽히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의 경륜보다는 각 지역을 찾아 다니며 잔 표(票)에 매달리는 후보들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든다. 멀리 내다보는 국가의 미래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기껏 지역감정에 호소하며 개발공약을 내거는 우리의 대통령 선거 수준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오는 12월 선거에서 뽑을 인물은 한 특정지역의 맹주(盟主)나 제후(諸侯)가 아니다. 지역정서에 호소하는 후보도 문제지만 대통령을 뽑아 놓고도 ‘어디 정권’ ‘어디 대통령’ 등으로 낙인찍는 폐단도 시급히 청산해야 할 구시대적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