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그렇게 큰 정치 자금은 선거의 정당성과 정권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관련된 일이라 검찰의 수사는 어쩔 수 없이 큰 제약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당시 미진했던 수사가 이번에 이회창 씨가 다시 선거에 나올 여지를 남겼다.
이 일을 제대로 살피려면 우리는 먼저 그것을 권력과 경제 사이의 관계라는 맥락에 놓아야 한다. 권력의 본질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물리적 힘으로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은 궁극적으로 군사력에 바탕을 둔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특정 지역에서 물리적 힘을 독점한 군사력으로 시작되었다. 군사력을 장악한 세력은 경제 부문에 대한 보호를 제공했고 경제 활동에서 나온 소득의 상당 부분을 보호의 대가로 가져갔다.
‘보호 산업’은 자연적 독점이다. 여러 세력이 다투면 효과적인 보호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정상적 사회에선 하나의 정부가 권력을 독점한다.
이 점은 폭력 조직들의 치열한 구역 다툼에서 잘 드러난다. 실은 폭력 조직들에서 우리는 애초에 권력과 정부가 자라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관할 구역의 주민들과 상인들을 다른 폭력 조직들로부터 ‘보호’하고 ‘보호세’를 거둔다.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곳에선 폭력 조직들이 정부를 대신한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 ‘마피아’가 정부를 대신한 것은 전형적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권력과 경제 부문이 소득을 나누는 데서 적정한 비율이 대체로 합의되었다. 권력이 자기 몫을 가져가는 방식도 세금으로 고착되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무거운 세금이 근본적 논점인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정치 자금은 권력이 경제로부터 합의된 세금에 덧붙여 가외로 빼앗아가는 몫이다. 적정한 수준을 넘는 수탈이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회에 여러 가지 해를 끼친다. 그것을 줄일 길을 찾지 않고서는 우리는 사회가 맑아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상하게도 이번 선거에선 이 논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파르게 높아진 세금도 불법 정치 자금도 언급된 적이 드물다. 현 정권이 마구 거둔 세금을 헛되이 썼어도 후보들의 비판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불법 정치 자금이 언급되면 그것은 정치 자금을 빼앗긴 기업들에 대한 비난과 고발에 국한되었다. 불법으로 수탈한 권력 대신 피해를 입은 경제 부문에서 책임을 찾음으로써 그런 태도는 상황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유난히 큰 자리를 차지했다. 이념이나 정책에 관한 논의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제 그런 물살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든 선거의 핵심적 논점은 권력과 경제 부문 사이의 관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후보를 고를 때 권력과 경제 부문 사이의 균형이 근년에 권력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