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준 경희대 교수 | ||
최근 몇 년 동안 참여정부에서 진행되었던 금산법 개정이나 생명보험사 상장규정개정, 결제서비스가 무리하게 포함된 자통법제정 등의 처리과정들을 보면서 필자는 삼성이 정말 ‘제국의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필자는 2년 반 전에 삼성공화국보다도 ‘삼성제국’의 현실을 우려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공화국(Republic)은 국민들(public)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권한을 대행하는 민주적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반면에 제국(Empire)은 권력을 독재자나 특정 계층이 비민주적으로 전횡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취지였다. 오늘날 삼성의 문제는 오너일가의 제왕적 권력과 가신그룹들의 무소불위의 권력행사가 빚어낸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지배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는 흡사 제국주의시대의 제왕적 권력행사나 간신배들의 행태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삼성의 X 파일 문제가 그렇고, 이번에 터진 비자금 폭로문제나 불법경영권 상속문제와 분식회계는 물론, 대한민국 전 영역에 걸쳐서 힘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인 정기적 뇌물상납문제나 차명계좌개설 등 과감하게 추진되어온 불법 탈법 과정이 정상적인 선진국 기업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폭로된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투명하고 깨끗하게 경영한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삼성재벌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권이 국회에서 떡값 검사들에게 우려해서 수사를 법에 의해 독립적으로 담당할 특별검사임명법(특검법)을 통과시키자마자 삼성그룹의 반응이 “기업경영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특검법 통과에 심한 우려를 표한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이다.
그 말은 현재 검찰에게 수사를 맡기면 경영활동에 지장이 없고, 특검에게 맡기면 더 큰 지장이 생긴다는 함의가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야말로 김용철 변호사 말처럼 삼성은 떡값 검사들을 은근히 기대한다는 국민적 의혹을 인정한 말이 아니라고 어찌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 말이 국민들 가슴에 진심으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 최고의 유수한 기업들이 한국을 세계에 빛낸 그 자부심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삼성을 통해 한국 재벌의 선진화와 투명화 등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려운 정치현실 속에서도 오로지 기술력과 경영능력으로 험한 환경을 파헤치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삼성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비리도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는 의구심을 줄 정도로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라니 한숨밖에 안나오는 것이 솔직한 국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이제 삼성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저간의 모든 부정적 행위를 일소하고 환골탈태하여 국민들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다시 출발해야만 성난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