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권력과 성공의 사닥다리도 한번 오르고 나면 아무 탈없이 내려오기가 어렵다. 그 어려움은 사다리의 높이에 비례한다. 권력과 성공의 사닥다리가 높을수록 탈없이 내려오기가 어렵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내려와야 할 때를 놓치고 머뭇거리다 추락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깨끗하게 물러난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어렵게 올라간 권좌에서 미련없이 물러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박수 칠 때일수록 더 오래 자리를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깨끗하게 물러나라는 것이나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은 자리나 권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물러나는 때를 놓치지 말라는 가르침을 담은 격언이다.
“오뉴월 겻불도 쬐다 말면 섭섭하다”는 속담도 있지만 권력과 부(富)와 명예의 상징이자 입신출세의 표상인 비단 옷(錦衣)를 벗어놓고 여염의 포의(布衣)로 내려 간다는 것은 웬만한 각오가 아니고는 마음 비우기가 쉽지않다. 임기가 끝나서라지만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자에서 들녘의 야인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다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사닥다리 내려오기는 이미 작년부터 시작되었다.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서 권력의 무게중심은 이미 대통령 당선인 쪽으로 넘어갔다. 염량(炎凉)세태, 공직자들은 벌써부터 새 당선인 쪽으로 줄대기에 급급하다. 대불공단 전봇대 뽑기에서 보았듯이 일선행정기관에서는 노 대통령의 지시보다 당선인의 한마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참여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던 정책도 인수위의 한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하루아침에 바뀌는 판이다.
한때 끈끈한 동지애로 뭉쳤던 여당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면서 더 이상 여당이 아니다. 손학규 당 대표의 18대 총선 첫 정강 정책연설은 참여정부에 대한 신당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5년동안 일자리 걱정, 교육, 노후, 주택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말만 시끄러워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한마디로 ‘뜬 구름 잡는 얘기나 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허송해 왔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 5년에 대한 신당의 평가다.
참여정부에 대한 구 여당의 이러한 평가가 노 대통령 스스로 피력했듯이 “안 그래도 초라한 뒷모습”에 구정물을 뒤집어 씌우고 소금을 확 뿌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선인(善因)이 반드시 선과(善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동기는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거나 기대에 못 미치면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정치의 비정(非情)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초라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리고 탈없이 권력의 사닥다리를 내려 올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