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이 점은 대못질이란 말이 처음 쓰인 정부 부처의 기자실 폐쇄에서 잘 드러났다. 자신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노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 점점 적대적 태도를 보였고 끝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기자실을 없앴다.
자신의 결정을 최종적으로 만들겠다는 노 대통령의 태도는 실은 대못질이란 말이 쓰이기 훨씬 전부터 뚜렷했었다. 그는 엄청난 비용이 들고 사회적 영향이 큰 장기적 과제들을 서둘러 집행했다.
행정수도를 실질적으로 옮기려는 사업의 경우, 토지 매입과 보상을 일찍 마쳐서 다음 정권이 사업 계획을 조정할 여지를 없앴다. 지금 심각한 쟁점으로 떠오른 ‘지방 혁신도시 사업’도 마찬가지니, 이미 정부가 토지를 많이 사들여서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회의가 커져도 계획을 조정하기가 어렵다.
아울러 노무현 정권은 크고 튼튼한 ‘대못’을 생각해냈다. 정책마다 그것에서 이익을 볼 강력한 집단이 나오도록 정책을 설계한 것이다. 그런 집단들은 노무현 정권이 물러난 뒤에도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는 정책들을 지키려 애쓴다. ‘지방 혁신도시 사업’에서 이 점이 아프게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어서 사업의 효과가 터무니 없이 부풀려졌다는 것이 드러나도 정부는 과감한 선택 대신 그냥 추진할 방안을 고른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 정권의 대못질은 특이하다. 유난히 공격적이고 거칠었다는 점도 그렇고 대못질을 한다고 공언했다는 점도 그렇다. 어떤 지도자나 자신의 정책을 영구적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대못질을 하는 일은 드물다. 대못질이 한 정권의 정책은 다음 정권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정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정권은 선거에서 져서 물러나므로 모든 정책들은 뒤에 바뀔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마련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그런 가정을 비웃으면서 “정권이 바뀌어도 고치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행태엔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성격이 큰 몫을 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것엔 이념적 바탕도 있다. 노무현 정권을 인도한 이념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한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다. 민족사회주의에선 지도자가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며, 지도자의 판단은 거의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교리나 정강과 같은 것들은 부차적이며 지도자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추종자들에게 노 대통령의 결정은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고 뒤에 다른 정권들이 바꾸는 것을 막는 조치는 자신들의 이념에 맞는 일이었다.
우리가 이런 사정을 아는 것은 여러 모로 중요하다. 정권 교체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도 필요하고 대못이 질러진 사업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