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개성공단에서 서쪽으로 한참 더 들어간 이곳까지 찾은 계제가 경기도에서 지원한 ‘개풍양묘장’ 준공식이었으므로 마음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온상과 밭에서 자라는 밤나무, 호두나무, 참나무, 잣나무 싹들과 묘목들이 마음을 환하게 했다.
그래도 헐벗은 산들은 북한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또렷이 보여주었다. 미국 지리학자 자레드 다이아몬드가 <붕괴: 사회들이 어떻게 실패나 성공을 고르는가>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것처럼, 숲의 사라짐은 붕괴된 사회의 가장 뚜렷한 징후이자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다. 사회적 위기는 인구가 자원보다 많아지면서 나온다. 너무 많은 농민들이 너무 많은 땅에 너무 많은 곡식을 심게 되고, 경지를 만들기 위해 숲이 제거된다. 숲이 사라진 산비탈은 사태가 나고 홍수와 가뭄이 심해진다. 그래서 경지의 토양이 씻기어 나가고 토양의 양분이 줄어들며 마침내 경지까지 줄어든다.
북한의 경우 애초에 그런 재앙을 부른 요인이 명령경제 체제의 낮은 생산성이었다는 점만이 다르다. 개인들이 토지를 갖지 못해서 나온 농업 생산성의 하락은 식량의 부족을 불렀고, 중앙 계획 당국은 산비탈에 ‘뙈기밭’이라 불리는 계단식 밭을 만들어 경지를 늘리는 대안을 추구했다. 그래서 전국 산지의 숲이 조직적으로 사라졌다. 게다가 가난한 주민들은 땔감과 재목을 구하러 산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산은 이내 황폐화되었다. 자연히, 식목을 통한 숲의 조성은 북한 사회의 재건에서 필수적 요소다.
그러나 숲의 조성이 북한 재앙의 근본적 원인인 압제적이고 비효율적인 체제를 바꿀 수는 없다. 북한이 현재의 명령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한, 생산성은 낮고 주민들은 가난할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이 가난한 한, 그들은 땔감과 재목을 얻으려고 산으로 가서 나무들을 베어낼 것이다.
그러나 명령경제 체제를 버리는 것은 압제적인 북한 정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경제의 개혁을 도우려는 남한의 제의들을 북한 정권이 줄곧 물리친 까닭이 거기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제안한 ‘비핵·개방·3000 사업’에 북한 정권이 그리도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 까닭도 같다. 북한 정권은 자신의 생존을 도울 만한 지원만을 받아들인다.
행사에 나온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는 내 눈길은 착잡했다. 민둥산들이 숲으로 덮인 모습을 상상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묘목들을 키워서 산에 심도록 돕는 일은 북한의 자연 환경을 위한 현명한 투자다. 북한 주민들도 그렇게 여겨서 사업에 호의적이라는 얘기였다. 무엇보다도, 이 일은 북한에 대한 지원이 주민들의 복지보다는 정권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양묘장 촉촉한 밭에서 자라나는 보얀 싹들이 그 점을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