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한세대 전만 해도 아버지는 한 집안의 ‘대외직명 가장(家長)’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배자이자 절대자였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물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가족간의 갈등도 아버지의 짧고 단호한 한마디로 결론이 났고 거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토를 달았다면 가족들이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느냐는 방법론이나 기술적인 문제에 국한되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의 말이나 행동거지가 더러 삼강오륜에 벗어났다 해도 아무도 이를 정면에서 비판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생각을 못했던 ‘제왕적 아버지’의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의 아버지는 집안의 절대자도 아니며 지배자도 아니다. 가장이라는 자리를 겨우 지탱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신세다. 호적법이 개정되면서 국가가 보장해주던 ‘아버지가 곧 가장’도 무너졌다. 부성(父姓)주의 원칙이 바뀌면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성을 물려주는 것도 쉽지 않게 된 세상이다. 집안의 스승이자 절대자였던 ‘제왕적 아버지’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는 얘기다. 집안에서의 가장 역할은커녕 크고 작은 집안일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돼 있는 경우가 많다. 더러 자문역할을 요청받지만 그것은 ‘옛 추억의 그림자’로 남아있는 ‘아버지=가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에 그친 사후통보인 경우가 많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아버지가 겉돌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된 것은 물론 뿔낼 힘도 없는 아버지다. 제목이 말하듯 뿔난 주체는 어머니이고 아버지는 그 어머니의 주위를 맴돌며 눈치만 살필 뿐이다. 더러 큰딸의 처지가 안쓰러워 몇 마디 거들어 보지만 마나님의 일갈(一喝)에 움찔해서 슬그머니 물러나고 만다. 사돈 집 가족과의 상견례 자리에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나가지만 역할은 대외 의전용 가장에 머물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위대했다. 아버지의 위상이 크게 떨어진 시대이긴 하지만 지난날 우리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세워놓은 업적까지 무너진 것은 아니다. 외세의 침략에 의병으로 목숨을 바쳤던 아버지들, 황량한 만주벌판과 달리며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들,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 나라를 세웠던 아버지들,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 나라를 지켰던 아버지들, 그리고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낸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이 남긴 크나 큰 발자취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건국 6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9주년이다. 서울 효창동과 수유리의 독립유공자 묘역과 동작동 국립현충원 앞을 지날 때마다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해 준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떠올린다.